작성자 이동윤  작성일 2019.05.26  

외국에서는 한국인을 어떻게 봤는가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李光耀)는 자서전에서 한국인의 독립운동을 이렇게 평가했다. '한국인은 일본이 한국을 통치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일본은 한국인의 풍습, 문화, 언어를 말살하려 했지만, 민족적 자부심을 갖고 있던 한국인은 굳은 결의로 야만적인 압제자에게 항거했다. 일본은 수많은 한국인을 죽였지만, 그들의 혼은 결코 꺾지 못했다.' 이광요는 한국인과 같은 저항 사례는 흔하지 않다고 썼다. 대만, 말레이·싱가포르인들은 이민족 상전들에게 별달리 저항하지 않았고, 일본인이 새로운 보호자가 되어주길 바랐다고 했다.

제국주의 연구로 이름높은 마크 피티는 저서 '식민지-20세기 일본제국50년의 흥망'에서 일본 식민지였던 한국과 대만, 만주의 주민 반응이 극명하게 달랐다고 했다. '한국은 일본의 보호국이 될 때부터 전쟁 상태였으며, 깊은 증오의 불길이 서서히 격해져 3·1운동으로 다시 활활 타올랐다. 철저한 탄압, 군대의 위압, 지도자의 투옥과 추방에 의해 한국인은 묵종했을 뿐이다. 그외 식민지의 주민 반응은 대체로 온건했다. 만주는 중국인의 대다수가 거의 반발하지 않았다. 반발은 커녕, 재산이 있는 중국인들이 본토의 군벌항쟁에서 벗어나 식민지의 좋은 치안과 안정적인 생활을 바라고 피난해왔다. 대만은 주민 다수가 일본의 지배를 환영하지 않았다고 해도, 소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훗날 안중근 의사에게 사살된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1906년 경성으로 출발하기전 부인과 아들에게 유언을 남긴다.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이른 감은 있지만, 대한제국 각지에서 폭동이 발생하고 있고 반일감정도 높아서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장담 못한다." 이토가 목숨을 걸어야 할만큼 선조들의 저항은 거세고 광범위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한국을 '동방의 등불'이라고 칭송한 것도 일제 치하에서 굴하지 않은 한국인의 꿋꿋함 때문이었다. 일본의 악랄한 식민 지배에 순종하지 않고 끝까지 항거한 민족은 한국인 뿐이었다. - 2019. 2.27. 박병선 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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