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이동윤  작성일 2019.03.10  

후회를 즐겨라
후회를 즐겨라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 아리스토텔레스

< 이 글은 2018.12.29. 매일경제에 게재된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의 글 입니다.>

"사랑은 시간의 노리개가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말이다. 덧없이, 홀연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인생을 걸고 지킬 만한 가치를 찾은 이는 얼마나 행복한가. 영국의 문호한테는 사랑이었다. 그는 사랑의 힘으로 불멸의 흔적을 쌓아서 시간과 맞서고자 했다.

2018년이 사흘만 남았다. 줄리엣의 표현을 빌리면 "마치 '번개가 치네'라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사라지는 번개"와 같이 또다시 한 해가 흘러갔다. 물론 스피노자는 여전히 사과나무를 심고 있을 터이고, 태공망은 여전히 강가에서 낚싯줄을 내리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할 일을 깨달아 시간의 문턱을 두려워하지 않을 이들은 얼마나 다행인가. 올해와 다르지 않게, 그들은 내년도 할 일을 반복할 것이다.

하지만 한낱 먼지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 대부분은 새해의 결심과 연말의 후회를 반복하며 일생을 살아간다. 정재승의 '열두 발자국'(어크로스)에는 인생 새로 고침, 즉 '작심'이 사흘만 가는 이유가 나온다. 인생을 바꾸려면 행동의 지휘자인 뇌의 정보처리 경로를 고쳐야 하는데, 인간이 먹는 음식 에너지를 25%나 사용하는 뇌는 지극히 에너지 효율적으로 움직이므로, 일단 고착된 습관을 좀처럼 바꾸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 중 10% 정도만 '올해는 책 좀 읽으리라' 결심하고, 실제로 연말까지 꾸준히 책을 읽는다. '인생 리셋'은 열 중 아홉이 실패하는 대단한 일이므로, 처음부터 어떤 습관으로 뇌를 길들이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나 나쁜 습관이 이미 들어섰다면 어떻게 할까.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란 말인가. 지금까지와 다르게 인생을 사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당연히 우리는 그럴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삶을 리셋하는 능력을 가지도록 뇌가 고도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연례행사인 '후회'가 바로 진화의 기나긴 도정에서 인류를 포함한 소수 영장류만이 획득한 '인생 리셋의 능력'이다. 실망과 후회는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르다. 실망이란 무언가를 선택했을 때의 기댓값에 실제 결과가 못 미쳤을 때 생겨나는 감정이다. 이에 비해 후회는 A를 선택한 결과와 B를 선택했을 때 기댓값을 비교해 더 나은 결과가 가능했음을 깨달았을 때 솟아나는 감정이다. 따라서 한 해를 열심히 살아온 자신한테 실망하지 말라. 실망하는 자는 송년의 술을 쓰디쓰게 할 뿐 자신의 미래를 새롭게 디자인할 수 없다. 오늘의 후회를 뼈저리게 즐겨라. 후회하는 자만이 삶을 다시 계획해 앞날의 또 다른 삶을 기약할 수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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