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이동윤  작성일 2021.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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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과 달리기
달리기는 내 삶이며 생명의 원동력이다

나에게 달리기가 동네 친구들과 뛰놀던 그냥 놀이가 아니라 건강과 관련된 수행이 된 것은 역사가 깊다. 1968년 시골에서 부산으로 고등학교 유학을 오면서 시작되었다. “건강한 정신은 튼튼한 신체에서 시작된다”는 교장 선생님의 조례시간 의례적인 훈시가 뇌리에 꽂히면서다.

새벽마다 일어나 집에서 조금 떨어진 뒷산 입구까지 2km 정도를 달려가 야트막한 산 정상까지 토끼뜀 자세로 올라가서 정상에서 국민체조 한 번 하고 다시 달려서 집에 와서 샤워하고 아침 먹고 학교 가는 일상을 거의 매일 반복했다.

대학가서는 산악부에 들어가 주로 속도 산행과 달리기를 하다가 졸업 후 병원 근무하면서도 짜증나거나 시간이 무료할 때마다 운동장이나 뒷산을 뛰고 달렸다. 그런 새벽 운동을 계속하다가 1993년부터 병원장을 하면서 수요일 오후에 직원들과 함께 북한산 산행을 하고, 매일 오후 일과 후 함께 뒷동산을 달리는 것으로 달리기를 통한 건강 증진 운동을 즐겼다.

어린이가 태어나 걷는 것이 세상과 맺는 인간관계의 모태와 같은 것이다. 이 근본적이고 끝이 없으며 단순한 경험을 어떤 사람들은 인적 없는 들이나 산, 바다나 강가를 걷거나 달리면서 끊임없이 답습한다. 세상은 결코 평탄하지 않고 언제나 기복 많은 길과 전망과 관점의 변화를 가르쳐주고, 내가 밟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것들 접촉하게 해준다.

우리 인간의 외부, 참으로 가깝고도 쉽게 다가갈 수도 없는 존재들의 신비와 마주하게 한다. 바위나 물, 수평 또는 수직의, 내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의 존재가 그저 자신이 영원히 알지 못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깨우침이 일상의 달리기나 걷는 중에 주어진다. 나의 몸과 세계의 직접적인 관계, 그 자연적인 관계가 느껴진다.

내 몸은 혼자 존재 그 자체로 나아간다. 버팀대 없이, 기계나 엔진도 없이 취약하지만 끈질기게, 작고 느리며 하찮기도 하고, 언뜻 보면 무력하고 허약하다. 그러나 그것은 항상 반복되고, 이어지며, 쌓여간다. 사회 속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며 삶이 나에게 다가오기도 하고, 혼자서, 오직 나 자신만의 힘으로 세상의 한 조각을 지나왔고 또 지나고 있다. 나는 삶을 통해 내 삶의 취약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알아본다.

그리고 그 둘이 다름이 아니라 같으며, 왜소함이 아니라 당당함임을 깨닫는다. 달리기의 큰 겸손함이 곧 큰 자부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단번이 알아보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인 느낌인 느림 역시 생각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달리기나 걷기는 무엇보다 겸허한 인내심과 몸의 끈기, 땅에 뿌리를 내린 몸의 승리다. 끈질김은 번개처럼 스치는 것을 이긴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지속성이다. 이 모든 것이 내 삶의 습관들을 갈고닦아 왔다.

살아오면서 자신의 인생에 던지는 최초의 자기 성찰적 질문이 아마도 "나는 왜 사는가?"라는 말일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이자 목적이 될 것이니까 말이다. 내가 살아가는 목적은 생물학적으로는 나를 닮은 유전자를 많이 퍼뜨리기 위해이며, 사회학적으로는 나의 유전자를 닮은 사람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기 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일 것이다. 달리기 또한 이런 나의 목적 달성과 관련이 있다.

내가 살아가는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럼 '누가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가?', 즉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삶의 주체에 관한 질문이 생길 수 있다. 당연히 내 삶의 목적을 현실적으로 달성시킬 주체는 나 자신이다. 창의적 생각으로 나의 꿈과 목적 달성을 위해 사회 환경의 진보적 발전을 만들어가는 사람은 나 이외에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건강도 나 자신이 스스로 직접 달리거나 뛰는 노력을 통해서만 성취 가능한 목표가 되겠다.

내가 생각하는 인생의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자세나 태도로 일상의 삶에 접근할 것인가의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직접적인 추구 방법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자연스럽다’는 의미는 주위 환경을 나의 욕심이나 의지에 의해 변형되지 않은 원래부터 존재하고 있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보며, '어떻게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 것인지'를 지금 현재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보이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관점이다.

그래서 창의성은 과거가 아닌 현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새로운 자연 친화성 활동의 개입 여지를 발견하는 것과 동일시된다. 지난 50만 년 간 인류가 살아왔던 수렵과 채집의 아날로그적 생활을 통해 전쟁에서의 생존과 운동경기에서의 승리를 위한 경쟁처럼, 우리 뇌는 끊임없이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운동신경을 갈고닦아 진화해왔다.

식량을 찾고 저장하는 등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두뇌와 신체를 사용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험난한 과정을 통해 사냥과 신체활동, 학습 등에 관한 생활 방식이 우리 뇌 회로에 각인되어 왔다. 반면에 지식정보의 활용을 바탕으로 하는 제4차 기술 산업 사회인 21세기인 현재는 더 이상 사냥이나 채집 등의 생활을 할 필요가 없으며, 온도가 조절되는 쾌적한 사무실 의자에 편안히 앉아 눈앞에 놓인 기계장치들만 바라보는 사회적 풍요와 행복 확산을 위한 두뇌활동 위주의 생활 방식으로 바뀌면서 신체활동의 부족이 초래되었다.

이런 신체 활동이나 운동부족이 초래하는 건강에 나쁜 영향을 초래하게 되었다. 첫째, 심장 질환, 고혈압, 뇌졸중, 비만, 당뇨, 요통 등 성인병의 주원인이 되고 있으며, 둘째, 일상생활에 있어서 습관적인 신체 활동량이 부족해지면서 발생하는 신체적, 정신적인 장애나 질병인 운동 부족병이 그들이다.

2010년을 기준으로 한국 성인의 과체중과 비만률이 30%를 넘어섰으며, 30세 이상 성인의 2%, 전체 성인 30명 중 5명이 당뇨병에 걸려있었고, 현재 국내 성인인구의 고도비만 유병률은 급증해 10년 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고, 특히 20~30대 초고도 비만율과 당뇨병도 크게 증가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운동부족 자체가 뇌를 쪼그러뜨려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신체와 뇌와 정신이 생물학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고급 명품의 이미지가 차가우면서도 빛나는 금속성의 하드웨어적 양적 사회였다면, 요즘의 디지털 사회에서는 따뜻하고 포용하는 감성적이고 소프트웨어적인 가치 사회로 전환되었다. 디지털 사회에서는 아날로그 시대의 자원 확보와 소유의 개념이 옅어지고 모든 것이 변화하고 나누고 재활용이 가능한 모두가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사회다.

지난 2002년부터 해마다 5월 두 번째 일요일에 개최하는 소아암환우돕기 마라톤대회와 11월 세 번째 일요일에 개최하는 행복트레일런축제를 통해 생긴 수익금은 전액 삼성서울병원과 신촌세브란스병원 사회사업팀을 통해 추천받은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들의 치료비로 후원하며 지금까지 6억 4천만 원 정도를 지원했다. 지난 16년 동안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소외계층 아동에게 지속적으로 나눔을 실천해오고 있다.

기부나 재능봉사라는 사회적 가치를 고양시키는 데 착안하여 "대회=수익"이라는 아날로그적 가치를 "기부와 봉사"라는 디지털적 가치로 전환시킴으로써 수익성 대회에서의 기부성 이벤트의 자발적 확산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참가자들에 대한 소액기부 및 봉사의 가치 확산에 기여함으로써 우리 대회만의 살아있는 기부 DNA를 창조할 수 있었고,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다.

‘더불어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는 사회적 활동들을 통해 50만년 이상에 걸쳐 서서히 누적된 아날로그적인 삶의 기준이 최근의 짧은 디지털 사회에서는 많이 변화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아날로그 시대의 양, 무거움, 가격의 기준이 디지털 사회로 진입하면서 질, 가벼움, 대중화로 진화되었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명품에 대한 이미지가 고급사치품, 집, 차 등 차갑게 빛나는 금속성의 하드웨어적 자원 확보와 소유 이미지였다면, 디지털 시대의 명품 이미지는 아름다움, 건강, 봉사 등 따뜻하고 포용하는 감성적인 소프트웨어적 변화와 재활용, 그리고 나눔의 이미지에서 그 차이를 느끼고 이해할 수 있다.

희소성을 제외한다면, 대중화의 정도가 명품과 고급의 이미지로 변화하는 등 명품의 기준도 진화되었다. 운동에도 승마와 요트 등 상위층의 제한된 사람들만의 친목모임의 성격이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이해하고 참여하여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골프, 야구, 축구, 달리기, 자전거타기, 수영 등이 대중운동으로 진화하고 있다.

수렵시대의 단체적이고 상호 의존 중심의 느린 삶이 디지털 시대의 개인적이고 재화 중심적 빠른 삶으로 바뀌면서 적응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받는 상대적 스트레스의 양이 엄청 나게 높아지고 있다. 스트레스의 건강에 대한 부정적 효과는 과도한 스트레스는 뇌세포 사이를 연결하는 신경회로들을 부식시켜 파괴하며, 만성 스트레스는 뇌 자체를 오그라뜨려 파괴하기도 한다.

단순 간결하면서도 부드러운 신체 단련이나 운동을 통해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같은 신경화학물질들과 신경성장인자들이 분비되면서 뇌세포 사이의 신경회로와 쪼그라든 뇌의 파괴 과정이 역으로 진행되면서 회복되고, 신경회로가 더욱더 강화되면서 스트레스 수준이 획기적으로 감소된다.

단순하고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운동을 할수록 운동을 하는 중에 마음과 욕심도 비울 수 있고, 더 감각적이 되어 인간의 본 모습에 가까워지고, 그만큼 신체 및 정신의 감수성도 확장시켜 줄 수 있는 자연 친화적인 운동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정신과 뇌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신체가 정신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이 연구결과 밝혀지고 있다. 달리기를 통한 나의 신체가 정신을 변화시키고, 변화된 정신이 내 삶을 바꾸게 되고, 언젠가 그런 각자의 변화가 모여 사회 전체가 바뀔 것이다. 자주 쓰면 자라나고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한다는 '용불용설'은 뇌도 근육과 다를 바 없다는 말이다.

행복은 마음의 상태이며 지각하는 방식이고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나 자신에게 접근하는 방식이다. 흔히 돈을 많이 가지거나 로또에 당첨되면 행복할 것이라고 믿지만, 행복을 느끼는데 소득과 환경이 미치는 영향을 10%에 불과하다고 한다. 나머지 90%는 철저히 개인의 노력에 달려있다는 말이다. 즉 요즘의 행복은 ‘소확행’처럼 조금 더 적극적인 가치로 변화하고 있으며, 찾아오기를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키워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행복은 추구하거나 창조하고 건설하는 것이기 때문에 평생에 걸쳐 삶의 전략을 행복하게 습관화해야 한다. 의미 있는 목표를 세우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목표에 몰입하는 한편, 운동과 명상으로 나 자신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돌보는 것이다. 운동은 자신감을 높여주는 동시에 겸손의 미덕도 길러준다.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은 목표는 매순간 새로 설정되는 것이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순간이 목표 자체보다 더 의미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과정의 보람과 아름다움을 받아들일 수 있어서 삶의 매순간을 깊이 행복하게 향유할 수 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한다는 것, 이것이 곧 정직함인데, 운동이야말로 정직함 그 자체다. 운동의 결과에는 속임수가 없다. 운동은 내가 노력한 만큼만의 결과만 보여준다. 운동을 즐기다보면 운동의 정직성을 닮아가고, 승부에 집착하기보다는 노력해서 나온 결과에 승복하고 더 나은 결과를 위해 매진하는 성실함을 갖게 된다. 마라토너들이 마라톤 벽이라는 죽음의 언덕을 넘듯 운동 중에 주어진 한계들을 차례차례 극복하면서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추진력을 배우고 더 강한 육체와 영혼을 가지게 됨으로써 더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달리기 자체가 삶이라고 본다. 내 삶을 내가 느끼는 것이다. 요즈음 사람들이 이렇게 쉽게 자신의 삶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없다. 하지만 달리기는 가능하다. 제일 좋은 게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 단점 가운데 하나가 자신보다 나은 사람에게 기가 죽는 경향이 있다. 달리기는 그런 것이 없다. 빠르면 빠른 대로, 느리면 느린 대로 완주했다는 자체가 최고의 성취이다. 살아가는 용기를 얻을 수 있다. 달리기 자체가 삶이며 살아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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