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이동윤  작성일 2019.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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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외과의사회 소식지 겨울호] 달리기 욕망은 행복의 길로 통하지
[대한외과의사회 소식지 겨울호] 달리기 욕망은 행복의 길로 통하지만 결코 붙잡을 수 없다

거의 일 년 만에 수서에서 탄천 산책로를 따라 잠실 한강합수부를 지나 청담대교, 영동대교, 성수대교, 동호대교, 한남대교를 지나 잠원동에 이르는 보슬비 오는 길을 달리는 오후의 풍경은 정말 멋지다.

20년 넘게 자란 천변 수목들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고, 비맞아 한결 산뜻해진 주로와 어울려 고풍스러워 보이고 나무나 돌 밑둥의 이끼들을 부드러워 손으로 한 번 쓰다듬이 주고 싶은 욕구가 일어날 정도다.

길 위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르막 길을 치고 올라가 고개 마루에 있는 굵은 나무에 손을 흔든다. 아름답고 장엄하기까지 한 풍경화 속에 내가 들어가 있는 듯한 환상 속에서 마음까지 초연해지는 기분이 든다.

이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듯한 아늑하고 포근한 기분이 들면서 나 자신의 존재가 그런 세상에 정당화되는 듯한 기적을 경험하는 듯하다. 짧은 순간들이지만 심오하기까지 해서 언젠가 죽게 되면 그런 기분을 빼앗길 듯한 아쉬움마저 남게 된다.

그렇게 내 정신은 불멸의 지상의 형상처럼 무한히 확장된 순간 속을 달린다. 지금 이 순간을 산다는 것, 추억이니 희망의 형태가 아니라 이미 끝난 발길로 되돌리지 않는 것, 끝을 향해 서두르지 않는 것, 그런 것이야말로 도달하기 힘든 단조로운 달리기의 이상이다.

가을에, 한가위의 여유로움에, 다가올 행복트레일런축제 코스 답사를 마친 홀가분함에, 점심에 반가운 사람들과 마신 몇 잔의 소주에 젖어 비 속을 달리며 보는 몸으로 느끼는 풍경은 소생의 재능을 품고 있다.

거기에는 씁쓸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오직 지금 이 순간의 세상과 화합하는 느낌이 되살아난다. 그때부터는 본질로의 회귀에 대한 기억이 다시 떠오르며, 다시는 슬픔의 소리는 다시는 듣지 않으려는 내면의 단단한 부적이 된다.

다른 주자들은 가을 보슬비 오는 호젓한 주로에서 느끼는 그런 계시의 순간들을 경험하지 못할 테지만, 더할 나위 없이 달콤하고 생생한 쾌락의 추억이 나를 부르는 감동적인 시간은 아니다. 아무리 강렬한 열정과 흥분의 순간들이라 하더라도 생의 원주 위에 드문드문 흩어져 있는 지점들일 뿐이다.

그 순간들이 어떤 상태를 이루기에는 너무나 드물고 너무나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진심으로 그리워하는 행복이란 결코 덧없는 순간들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단순하면서도 영원한 어떤 상태이다.

지나간 풍경은 일종의 '메멘토 모리' 같아서 존재의 유약함을 일깨우며,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강렬할 것이 없지만, 시간이 계속될수록 매력과 호기심이 커져서 마침내 최고의 행복을 발견하게 되는 계시에 더없이 적합한 찬란함으로 인해 시간이 멈추고 나로부터 분리되는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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