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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뉴스프레스171]달리기를 통해 나 자신의 완전한 변화와 개혁 |
[조선뉴스프레스171]달리기를 통해 나 자신의 완전한 변화와 개혁을 이룬다
근육을 믿지 말자. 근육은 잘 길들여진 고지식한 일꾼과 같다. 주의 깊게 단계적으로 부담을 늘려 나가면, 근육은 그 훈련에 견딜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적응해 나간다. 순서만 차근차근 밟아나가면 결코 불평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루 이틀이라도 일감이나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면 '아하, 이제 그렇게까지 힘쓸 필요가 없어졌구나. 아, 잘 됐다.'하고 스스로 판단하여 한계치를 떨어뜨려 나간다. 근육이라는 것은 살아있는 동물과 마찬가지로 가능하면 힘 안들이고 살고 싶어 한다. 무거운 짐이 주어지지 않으면 안심하고 기억을 지워나간다.
달리기가 건강에 좋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달리는 것는 바로 고통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 고통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실감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성적이나 숫자의 순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행위 그 자체 속에 유동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기록도, 순위도, 겉모습도, 다른 사람의 평가 등 모두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달리고 있는 주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자신의 다리로 확실하게 완주해 가는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했다, 참을 수 있는 한 참았다고 나름대로 납득하는 것에 있다.
주자로서의 내 삶의 꿈은 '하루 단 한 걸음이라도 더 먼 거리나 새로운 길을 달리는 것'이다. 어떤 일상의 계획이 작심삼일이 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바로 정신적 육체적 원인의 개선 없이 증상만 치료하려는 생각 때문이다. 과정 지향적이어야 할 목표가 아니라 결과 중심의 꿈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다.
생활 습관을 건강한 방향으로 바꾸지 않고 배불리 먹는 체계에 발을 담근 채 살을 빼려고 하는 식이다. 혼자 달리면서 고독과 평온함, 그리고 명상적 사고를 즐기며, 나 자신의 자아를 찾아 나 자신과 만나고 싶다. 그래서 혼잡하거나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걷거나 달리는 것을 별로 내켜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혼자 달려가는 가는 세상을 좋아한다.
과도하게 나 자신에게 집착하지도 않고, 지면에 착지하는 발의 감촉이나 나무 사이에 서린 안개 같은 대상에 현혹되거나 산만해지지 않는다. 오리해 마음은 충만해지고, 그 자체로 온전하다. 그래서 잡념은 거의 사라지고 없으며, 마음은 산만하지 않고 순간에 충실하게 된다.
산만해지기 쉬운 환경 속에서도 고요를 경험할 것이다. 바깥 환경이 위협이나 유혹을 받지 않을 때, 어디서라도 더 깊은 의식과 더 많은 마음을 챙기며 자연스럽게 쉬게 된다.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온전히 현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편안하게 몸과 마음이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장소에서 달리기가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건 대체로 자존감 부족이나 지나친 비교의 결과이다.
어떤 움직임이 주의를 기울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흥미도 없어진다. 명상하는 마음으로 달리기를 한다는 것은 현재의 경험이 주의를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다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달리기가 명상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다른 것과 비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지금 하고 있는 달리기에 대해 좋은 기분과 감사하는 마음을 품어야 하는 이유다. 달리기를 온전히 누릴 수 있으면 즐거움과 의미 또한 만날 수 있게 된다.
달려가다 보면 발걸음의 단조로운 리듬을 타면서 머릿 속에서 나의 존재 자체를 완전히 잊어버리는 무아지경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달리기를 통해 내적 개조 과정인 나 자신의 완전한 변화와 개혁을 이룰 수 있게 된다. 달리기는 삶의 고통과 근심, 불안과 우울을 치유하는 생체 아편이고, 공동체적 선을 위해 누구와도 함께 행동하고 책임지고 비난을 극복할 수 있는 행복호르몬이며,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자아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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