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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벽과 무아지경 |
마라톤의 좋은 점은 무엇일까? 환경이나 자연적 모든 상황이 자신의 앞길을 막더라도 완주 의지를 굽히지 않고 기꺼이 모든 역경을 감수하면서도 출발선에서의 완주목표라는 이기적 욕망의 실현을 통해 긍정적인 인간으로 변화시켜 주는 마라톤 정신이 있다는 것이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여 42.195km를 달리다 보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상 황홀감이나 극치감인 '러닝 하이(running high)'와 최악의 절망감과 극한적 낭패감이 '러닝 로우(running low)'를 동시에 경험한다. 훈련의 충분함이나 부족함과 무관하게 30km를 넘어 체내의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고 누가 뒤에서 힘빠진 내 몸을 사정없이 잡아당기고 있는 것처럼 앞으로 나가지 않거나 크고 단단한 벽이 앞을 가로 막고 있는 듯한 강력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이를 '마라톤 벽'이라 한다. 이런 상황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으면 대회 중에 생기는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완화시켜 편하게 달릴 수 있다.
티베트 불교 승려들의 명상과 뇌파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신경과학자 숀 오놀린은 명상과 약 40Hz의 감마파 사이의 상관관계를 증명했으며, 명상의 경지가 높을수록 뇌의 에너지 소모 정도를 평상시보나 낮게, 심지어 거의 0에 가깝도록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뇌 소모 0 가설'에 따르면 뇌 소모가 낮은 상태에서는 자신을 잊는 상태에 해당하며 뇌 소모가 높은 상태는 자아를 경험하는 상태에 해당한다. 감마파는 뇌 소모가 낮은 편에 속한다.
감마파는 고도의 종합적 정신작업을 할 때, 그리고 뇌의 상이한 부분이 연결되며 일할 때 많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오랫동안 수련을 한 명상가, 고승 등에서 감마파가 가장 많이 나온다. 이런 연구를 토대로 체력소모가 생각에 미치는 영향이나 사유를 할 수 있는 상황을 마련해주는 역할에 대해 응용하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받을 수 있다.
강도 높은 육체활동은 뇌를 저소모 상태로 만든다. 지친 육체가 달리기의 리듬 속으로 파고 들 때 뇌가 모든 긴장을 다 푸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일에 대한 긴장을 놓아줌으로써 오는 일시적인 공허감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배 부르게 식사를 한 후에 식곤증이 밀려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혈액이 소화기로 몰려가 뇌로 가는 혈액이 부족해지다 보니까 뇌로 가는 산소도 덩달아 부족해지는 것이다. '마라톤 벽'처럼 장거리 달리기에서 후빈에 체력이 고갈되는 지점에 도달하면 모든 에너지가 한 발 한 발 내딛는 데 집중하게 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보통 신체에 공급되는 총 에너지의 20% 이상을 소모하던 뇌는 저소모 상태로 바뀐다. 그 결과 나타나는 것이 '나를 잊는' 초월의 상태다. 보통은 생각을 하면서 그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장거리 달리기를 할 때는 나 자신을 인식하는 힘 자체가 약해지기 때문에 생각을 하는 경험을 하지 않는다. 생각의 자리에 사유가 들어오고, 전혀 내 것 같지 않은 그것은 외부에서 뜬금없이 나타나 홀연히 사라지는 것 같다.
사유는 그들이 준비되었을 때 나타나며, 그 때가 왔다는 것은 전체적인 뇌 소모는 줄어들고 감마활동은 증가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육체가 피로해짐과 동시에 일상의 틀에 박힌 연관들이 충분히 느슨해지면서 좌뇌 전두엽, 좌측 두정엽과 우측 소뇌에서 고도의 통합된 활동이 일어난다. 그 결과 환경과 관련된 슬데없는 감각자극들이 모두 걸러져 정신적 빈터인 일종의 공백상태가 생긴다. 중요한 것은 마라톤 벽이 나타나는 이유가 아니라 발생하여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고 있으면 다른 모든 시각과 청각이 사라지는 무아지경의 상태를 느낄 수 있다. 지속적으로 집중하고 지속하는 훈련을 하면 그런 무아지경에 빠지는 횟수와 시간을 늘일 수 있다. 달리기에 고도로 집중하여 외부자극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상태가 되면 시간이 느려지고 주위의 사물에 대한 지각이 희미해지고, 뇌에 아무런 자극이 남지 않게 되면 과거나 미래, 성공이나 실패, 옳고 그름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된다. 오로지 달려나가는 현재라는 순간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 순간이 자아와 비자아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이 상태에서 나의 뇌는 생각과 사실 사이의 관계에 100% 집중하며, 나의 정체성은 더 이상 역사를 가진 자아가 아니고, 대신에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달리기에 대한 생각과 의지가 새로운 나의 정체성이 되어 내가 지금 집중하고 있는 마음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뇌와 마음은 더 이상 나의 기본적인 정체성을 구성하는 신경망을 활성화하지 않고 전두엽이 나을 완전히 현재 수행하고 있는 일에 머무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마라톤 벽이 어려운 고비이긴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지구성 훈련이 부족하거나 에너지 축적이 미흡하거나 정신적 집중력이 유지되지 못한 것이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어느 하나가 문제라기보다는 주자와 환경 사이의 보다 복합적인 요인들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으로 생각된다. 자신의 괴롭히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가능한 문제해결 방안에 대해 집중하여 자신이 해야할 가장 최선을 다해야 한다. 포기하고 싶은 강력한 심리적 유혹을 뿌리치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려 결승선을 통과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마라톤 정신이기 때문이다.
달리기 자체가 힘들어지기 시작할 때는 예전의 잘 달렸던 대회와 힘들게 달렸지만 결국에는 완주에 성공했던 대회들을 생각하며 혼잣말을 하며 자신을 격려하고 다독인다. 이런 긍정적인 혼잣말이 대회 성적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키며, 평소에 대회에 참가할 때 자주 사용하는 긍정적 주문들을 가지고 있으면 도움이 많이 된다. 내가 자주 사용하는 말은 "오늘도 결국 나는 시간 내에 완주하게 될꺼다!" "매일 모든 면에서 나는 조금씩 더 좋아지고, 조금더 강해지고, 조금더 행복해지고 있다." "이 정도는 충분히 견딜 수 있다. 그만큼 나는 역시 건강해" 같은 말이다.
오늘도 즐겁고 건강한 달리기 생활 만드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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