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즐거운 마라톤 대회를 위한 달리기 에티켓들... |
아직 아침 저녁으로 꽃샘바람이 손을 시리게 하지만, 이제 만물이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는 완연한 봄이다. 지난 주부터 벌써 근교산이나 한강 둔치 자전거 길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겨우내 묵혀 운동부족으로 찌뿌듯해진 몸을 오랜만에 따뜻한 햇살 속에 일광욕을 시키며 가뿐한 마음과 기분을 느끼기 위한 무의식적인 행동이 아닐까 싶다.
혼자만의 생각에 젖어 아무 생각없이 달리다 보면 뒤에서 전해오는 급한 숨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곤 한다. 괜히 내가 상대의 경쟁심을 자극할까 오히려 더 속도를 줄이면 똑같은 거리에서 숨소리가 유지된다. 그 때는 할 수 없이 속도를 올려 한 2km를 빠르게 달려 다시 나 혼자만의 달리기 속으로 들어간다.
겨울에 추위 때문에 야외 운동을 하지 않던 분들이 날씨가 풀리면서 야외에서 달리기를 시작하거나, 체력을 강화하기 위해 아예 처음 달리러 나오신 분들은 이야기를 나눠 보지 않아도 호흡과 자세에서 차이가 난다. 아침 달리기는 나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혼자 달리기를 방해받지 않으려 한다.
이제 달리기를 시작하여 조만간 달리기 대회에 참가할 사람들이 즐겁게 달리기 위해서 관심을 가져야 할 달리기 에티켓들을 소개한다.
달리기는 걸을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의지만 있으면 즐길 수 있는 아주 안전하고 체중조절에 최적의 운동이다. 그렇지만 달리는 속도에 따라 한 발이 지면에 착지할 때마다 자기 체중의 3~5배의 무게가 발목, 무릎, 그리고 대퇴부 관절에 가해지는 과격한 운동인 반면에, 평소의 자기 심장의 엔진마력에 과도한 부하가 걸리는 위험한 운동이기도 하다.
본격적인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2~3주간의 걷기와 2~3주간의 교대로 걷기와 달리기를 통해 충분한 근력을 만들어야 하며, 자신이 원하는 충분한 거리를 달릴 수 있을 때까지 덜컥 대회에 참가하거나 다른 주자들과 경쟁하고 싶은 충동을 참아야 전혀 원하지 않는 부상에서 안전할 수 있다. 달리기도 다른 운동과 마찬가지로 준비된 자만이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대회에 나가는 주자들이 범하기 쉬운 가장 흔한 실수가 바로 어르신들이나 아주머니들이라고 얕보고 무작정 대시하다가 얼마 가지도 못하고 주저앉는 것이다. 달리기는 내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 자신의 속도로 가야 한다. 어르신들이나 아주머니들이 나를 지나친다고 '아니 감히 나를!'하면서 자존심 상하여 그들을 따라 잡기 위해 질주하는 순간 이미 그 날의 달리기는 악몽의 서막을 올리기 시작한다. 장거리 달리기는 자신의 체력을 적절히 안배하면서 끝까지 쉬지 않고 달리는데 성공의 열쇠가 있다.
또 처음 대회에 나가서는 뒷줄에서 주자들에게 앞이 가로막힌 채 답답하게 달리기보다 앞이 탁 트인 선두에서 휘파람 불며 달리는 초보 주자들도 고생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대회에서 앞줄에 서는 주자들은 통상 순위를 생각하거나 기록 갱신을 바라는 훈련된 주자들이기 때문에 출발 총성이 울리는 순간 지면을 박차고 총알처럼 앞으로 질주하게 되는데, 순진하게 자신의 체력상태를 알지 못한 채 흥분된 야망의 분위기에 휩쓸려 함께 달려나가는 순간 또 다른 서막이 시작된다. 그러나 진정한 대회에서의 즐거움은 대열의 후미에서 출발하여 자기 앞에서 달리고 있는 주자들을 한 사람 두 사람 제끼며 달리는 재미에 빠져 피로도 모른 채 자신의 능력에 감탄하면서 끝까지 달리게 되는 것이다.
시내 도로에서 친구들끼리 한 무리를 만들어 길을 가다가 다른 사람의 기척을 느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람이 지나가도록 틈을 만들어주거나, 큰 소리로 떠들다가 다른 사람들이 오면 지나갈 때까지 조용히 목소리를 낮추는 것이 예의이며, 또 그렇게들 하고 있다. 그런데 마라톤 대회의 주로에서는 종종 끼리끼리 횡대로 길을 막거나 자기들끼리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거나 음악을 들으며 뒤에서 달려 오는 주자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분들이 있다. 아마도 사회에서는 정장을 하고 자신의 체면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지만 대회장에서는 예전에 훈련에 소집된 예비군들처럼 자기만의 즐거움이나 괴로움, 혹은 편안함만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진정한 주자는 달랑 마라톤복만으로 주로에 나섰을 때 다른 주자들에 대한 배려와 도움 등 달리기에티켓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마라톤 대회에서 주자들의 목표한 시간 내 완주를 도와주는 페이스메이커나 주로상의 응급상황을 도와주는 레이스패트롤 주자들처럼...
마라톤 대회에서는 통상적으로 5km마다 급수대가 있어서 물과 간식 등을 공급할 수 있고, 7.5km부터 역시 5km마다 스폰지대가 있어서 물에 적신 스폰지로 체열 때문에 뜨거워지고, 땀이 난 얼굴과 몸에 묻은 먼지들을 대강 훔칠 수 있다. 그런데 급수대나 스폰지대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속도를 줄여야 하는데, 갑자기 앞에 가던 주자가 급하게 방향을 바꾸어 바로 앞으로 들어오거나 뒤어서 질주하여 자기 앞에서 갑자기 멈추어 서는 주자들 때문에 충돌하는 줄 알고 본능적으로 급정거하면서 고함을 지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속도와 자신의 앞뒤 주자들의 속도나 방향을 잘 보면서 자신의 스텝을 결정해야 충돌사고나 다른 주자의 발에 걸려 넘어지는 불상사를 피할 수 있다.
각자가 앞만 보고 달리는 주로 상에서 옆에 가는 동료나 지인을 발견하고 갑자기 주로를 옆으로 횡단하거나, 전화로 경치나 분위기를 지인에게 실시간으로 전송하기 위해 갑자기 속도를 늦추는 주자들도 자신이 횡단하는 주로의 평행선 상에 있거나 근방에 있는 다른 주자들에게 위협적인 존재들이 될 수 있다. 급수대에서 물컵을 잡은 채 테이블 앞에 서있거나 얼쩡거리기보다는 앞으로 나아가거나 아니면 급수대 후방의 노견으로 나가 걷는 것이 충돌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급수대 위에 놓인 물컵을 새가 먹이를 채가듯 재빠르게 잡고는 앞으로 나가면서 마시고는 급수대 근방에 수집함이 놓여 있는데도 불구하고 구태여 길가 멀리까지 던져버리거나 수집함 주위에 함부로 버리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급수대에서 춥거나 더운 것도 마다하고 봉사하고 있는 학생들은 내 자식이며, 성인들은 다른 주자들의 즐거움을 위해 자신의 달리기 욕망을 삼키고 있는 우리 가족과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나의 일탈적인 행동 때문에 풀밭 너머까지 물컵을 줏으러 들어가야 한다면 좀 미안한 일이 아닌가 말이다.
마라톤 대회를 수영장 쯤으로 생각하고 상체는 벗은 채 스키니한 팬티 하나만 걸치고 의기양양 주로를 달리는 주자들이 있다. 마라톤 대회는 각양각색의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공개된 장소에서 하루를 즐기는 운동이다. 그런 만큼 자신만의 만족도 중요하지만, 내 부모나 가족, 혹은 자녀들이 봐서 눈길을 돌릴 만한 의상차림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생각도 배려를 해서 부드럽게 하는 것이 진정한 달리기 에티켓일 것이다.
마라톤 대회는 대회 조직위는 주인이며 주자들은 초청된 손님이다. 주인과 손님의 관계는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서로 도와야 기분 좋은 만남이 될 수 있다. 우선 주최측에서는 날씨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참가자들에게 전달하여 경험이 없는 초보 참가자들이 적절한 의복을 입고 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안내를 하고, 구급차를 요소에 배치하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즉시 환자의 이송이 가능하도록 도모하고, 날씨가 더울 때는 급수대 사이 2.5km마다 스폰지대를 반드시 설치하여 주자들이 땀을 닦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요즘은 마라톤 클럽이 많아지면서 단체 참가자들이 많은데, 단체 참가시에는 경험자들이 초보 참가자들에게 아침 식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여 반드시 좋은 컨디션에서 출발할 수 있도록 지도하며, 더운 날씨에 자신의 능력을 벗어나는 속도는 위험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개인 페이스 유지가 어려운 초보 회원들에게는 개인적인 자체 페이스 메이커를 1대 1로 붙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주행 중에 환자가 발생하여 어떤 사람이 먼저 처치를 하고 있은 중이라면, 환자의 회복에 도움을 주고 싶은 주자라 하더라도 우선 먼저 환자를 보면서 관리하고 있는 사람의 의견을 듣거나 허락을 받고 처치에 합류하는 예의가 중요하다. 그래야 일관성있는 처치가 되고 결국에는 환자에게 이득이 될 것이다.
마라톤 대회는 출발선을 떠난 주자들이 자신들의 체력을 적절히 안배하여 결승선까지 도착하기 위한 달리기 경주이며, 대부분의 완주자들이 경주에서의 우승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42.195km라는 백리 길을 쉬지 않고 달려 완주의 승리자가 되기 위한 것이다. 달리는 동안의 불편과 불쾌함, 편안과 즐거움, 그리고 실패와 좌절감, 도전과 승리감 중에 어느 것을 경험할 것인가는 오로지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주자들이 유일하게 믿는 것은 주로일 뿐이며, 헤드폰이나 동료와의 대화도 아니며, 에너지 겔이나 초코파이도 아니다. 달리면서 이것은 옳고 저것은 바르지 않다는 식의 판단을 하는 것보다 자신의 일인 달리기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을 더 많이 볼수록 달리기가 더욱더 즐거워진다.
오늘도 즐겁고 건강한 달리기 생활 만드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러닝 라이프 4월 호 원고)
|
|
|
|
작성자
다음글 : 
이전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