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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들이 달리는 길 위에는 항상 현재의 흐름만 존재한다 |
주자들이 달리는 길 위에는 항상 현재의 흐름만 존재한다
달리는 사람들은 자신이 뛰면서 통과하고 있는 길과 연결되어 있는 지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달리면서 겪은 그대로의 평범하기 그지 없거나 반대로 아주 특별한 일화들, 또는 일시적이거나 중요한 만남들과 관련된 체험을 있는 그대로 기억할 뿐이다.
몇 킬로미터씩 달리는 동안 단 하나 뿐인 현재 달리고 있는 길의 흐름을 따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매 순간 두 갈래 길에서 다른 길로 갈 수도 있지만, 결국 그 길 또한 자신이 달릴 수 있는 유일한 단 하나의 길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쩌면 어떤 순간 이 길이 아닌 반대쪽 길로 갔더라면 친절한 동반 주자를 만나거나 유서 깊은 장소를 지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생각만으로 다른 길을 체험할 수는 없다. 우리 몸을 둘로 나눌 수 없으니 지금 가고 있는 이 하나의 길에 만족하고, 여기서 만남의 열쇠를 찾아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달려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무엇을 보아야 할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길을 선택하고, 길이 나에게 내가 보거나 생각해야 할 것, 따분하거나 경이로움 같은 것을 소개해줄 뿐이다. 만약 다른 길로 갔더라면 보았을지 모를 무언가에 대한 영원히 충족되지 않는 욕구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이 길을 선택함으로써 피할 수 없으며 동시에 내 삶에 자양분이 되는 일종의 충만함과 필연의 느낌을 체험하게 된다. 그런 매일 혹은 며칠의 규칙적인 달린 길이 만드는 기나긴 실이 동아줄처럼 꼬이고 모여 인생의 실타래를 만들게 된다.
새벽 강가의 서늘한 기운이나 도시의 밤의 시끄러운 도로나 더운 한낮 숲속 오솔길의 시원한 바람의 느낌처럼 각각의 만남과 각각의 우연들 속에서 매번 '그' 길에서, '그' 굽이에서, '그' 고개의 양지바른 귀퉁이에서 느닷없이 어떤 강렬한 필연의 느낌을 느끼곤 한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나를 위해 준비하며 기다렸을지도 모르겠다는 강렬한 연대감으로 이어지는 직감을 느끼기도 한다. 내 앞에 놓인 풍경이 발검음에 맞게, 꿈에 맞게 구성되기라도 한 듯이 명백한 삶과 길과의 대단한 필연적 우연을 감지하게 된다.
내가 지금 갈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 가진 경이롭고 필연적인 우연 앞에서 불가피하게 똑같은 시선과 감정을 되찾게 된다. 내가 선택하고 갈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 가진 한계와 풍요로움에 더해 사물과 존재에 대한 더 깊은 호기심과 부추김에 의해 나만의 길을 달려가게 된다.
내가 달렸던 길의 아주 미세한 흔적들이 거미줄처럼 사고 얽히고 설켜 내가 만든 삶의 모습을 나의 인상들로 세상에 펼치고 있다. 어떤 것은 겉보기에 전혀 특별하지도, 아무런 의미도 없어보이는 것인 반면 어떤 인상은 다른 인상들보다 더 오래 남게 된 것들도 있다.
살아가면서 나의 개인적인 기억은 다른 누군가의 기억과 무엇하나 비슷하지 않다.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나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거나, 만났던 적이 있지만 전혀 기억이 없어서 유령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주자들이 달리는 길도 이와 똑같다. 실제 시간과 기억의 시간을 대면시키는 일은 그래서 부질없는 일이다.
나 자신은 물론이고 지나왔던 길, 숲, 들판, 만났던 얼굴들, 감동의 장소로 돌아가고 싶다고 무작정 가보자고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릴 적 뛰어놀았던 고향의 골목들처럼 이미 알아보지도 못한 정도로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변해 있어서 나 자신의 기억마저 의심하게 만들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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