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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시간과 감정의 상대성 속에서 새겨지는 이미지다. |
풍경, 시간과 감정의 상대성 속에서 새겨지는 이미지다.
어제 오후 업무 종료 후에 일 때문에 잠원동을 출발하여 잠수교, 한강 북측 산책로로 한남 나들목, 한남오거리, 북한남삼거리, 하얏트호텔, 남산식물원, 남산도서관, 후암동 소월길, 힐튼호텔, 남대문시장, 숭례문, 서울시청에 이르는 11km의 오르막과 내리막길을 km당 8분여의 속보로 이동했다.
초겨울 풍경의 느낌은 언제 어디서나 거의 비슷하지만, 그래도 해질녁 산기슭의 풍경들은 나의 시선 이전에 하나의 자연이 만드는 작품에 대한 감정 반응일 경우가 대분분이다. 각각의 장소는 그곳에 다가가는 나 자신과 그 순간의 기분에 따라 저마다 다른 감정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걷기는 나의 두 발이 지면을 밟아 접촉하면서 마주치는 일이다. 땅과 관계된 행위이므로 도로, 오솔길, 음식점, 호텔, 방향 표시 등 자연 속에 새겨진 다양한 사회질서를 동원한다면 사회학적, 지리학적, 생태학적, 생리학적, 미식가적, 기상학적 등등의 다양한 공간에 잠기는 일이기도 하다.
세상의 맨몸에 부딪치면서 일종의 신선한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햇빛에 달궈져서 바람에 실려오는 소나무 향이나 가들판을 가로질러 흐르는 강물, 그 강물에 비춰 빛나는 석양의 붉은 불덩어리를 보면서 느끼는 감탄은 가던 발길을 잠깐 멈추고 풍경을 우러러볼 힘을 부여한다.
시내에서 살면서 만물의 평범성과 중요성을 잊고 지내다가 한참을 걸은 후에야 다시 감각을 떠올리고 벅찬 감동을 느낀다. 다시 세상의 거센 바람을 맞으며, 도시 때문에 잘려나간 위대한 순간들을 되찾게 된다. 태양이 그들을 비추고, 층층이 쌓인 침묵 위로 평화의 순간이 떠오른다.
나는 내가 밟고 지나갈 수 있는 이 땅을 사랑한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들이 나늘 가득 채워주는 이 세상을 사랑한다. 그리고 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순수한 선의 아름다움, 나무와 풀들의 장엄함, 깊은 계곡의 물의 활기찬 내달림에서 나 자신의 활달한 힘을 간절히 원하게 된다.
내가 둘러보고 감격하는 모든 아름답고 위대한 풍경들은 발걸음을 통해 내가 소유하게 만드는 일종의 초대이다. 이런 풍경이 전하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란 바로 삶의 여정에 대한 취기이며, 그런 장소의 힘은 단지 소유에 대한 깊은 열망을 불러 일으킨다.
풍경은 그저 하나의 대상처럼 앞에만 있지 않고 감싸기도 하고 스며들기도 한다. 또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정의되지도 않아서 아무리 습관적으로 사물의 외관을 중시한다 해도 시선 아래에만 놓이지도 않는다.
풍경은 단순한 시각적 골조가 아니라 하나의 어떤 분위기이자 감각의 아루라이다. 특정 장소와 관련된 풍경은 무거움 또는 가벼움을 가지며, 아무리 그것에 대해 논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결코 하나로 정의되지도 않고 또 그럴 수도 없다.
풍경에는 길과 바람, 먼지와 비와 눈, 추위와 더위, 발 또는 땀과 신체의 접촉도 포함된다. 풍경은 각각의 감각들이 중첩되거나 서로 섞이는 시각적, 음향적, 촉각적, 후각적인 입체적으로 전신적인 공감 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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