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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화한 우리 아들들의 넋을 기리며..... |
저는 육군 군의관으로 오래 근무를 했습니다.
개원한 동료들이 집사고 땅사고 할 때 저는 한달 생활비를 걱정하며, 동생들 등록금을 은행에서 대출받으면서도 나라를 지킨다는 명예로 전후방을 돌며, 정말 답답할 때는 몇 번씩 민간 병원의 야간 당직으로 숨통을 트면서 20년 가까이 지냈습니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와서 군인들의 명예심을 땅에 패대기 칠 때 그만 신물이 나서 전역을 결심하였습니다. 그 때의 빠듯한 생활를 생각하고 요즘의 어려움도 즐겁게 잘 넘기고 있는 편입니다.
저는 북한과의 문제에는 상당히 민감할 뿐만 아니라 강력합니다. 지금도 전쟁이 일어나면 수복되는 평양관구 병원장으로 자원할 생각을 갖고 있으니까요.
월남이 월맹에서 패하고 난 후에 월남지역에서 평소 알게 모르게 월맹의 통일운동을 지원했던 모든 지식인과 의사들 같은 쁘띠 브로주아들, 노동운동을 선동했던 지도자들은 모두 사상학교에 입교하였으나 대부분이 제거되었습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수평적이거나 계층간 비판은 약간 허용되지만 상하조직의 지도노선, 특히 공산당이나 지도자에 대한 비판은 있을 수가 없으며, 있어서도 안되기 때문입니다.
6.25 때, 처음에는 대부분의 소작농들인 우리 농민들도 지주에 대한 원망과 어려운 생활 때문에 막연한 좌익성향들이 많았었지만, 적화지역에서는 처음의 선전선동과 달리 아무리 악랄한 지주도 소작농의 것으로 묵인해 주던 논두렁에 심은 콩이나 집안에 키우는 닭, 돼지, 소는 말할 것없고 심지어는 감나무에 열린 감까지 수확량에 포함시켜 공출하는 공산당의 실상을 체험하고 등을 돌린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모택동이 처음에는 국민당에 비해 열세인 중국 공산당을 끌고 겉으로는 국민당 정부와 협상하는 유화적인 제스쳐를 계속하면서 험난한 사막을 지나 중국 대륙에서 국민당 정부를 몰아내는 빨치산 운동은 유명하지요.
아직도 북한을 이끌고 가는 집단(당 중앙)의 생각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는데, 우리만 말 그대로 우리식으로 일방적 짝사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입니다.
우리 정치가들과 정부는 지금까지 너무나 자신들의 생색내는데만 충실했지, 진실로 국민들의 아픔과 사랑에는 허언과 가식으로 일관해 왔음이 요즘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내 새끼가 여러 명이나 죄없이 앉아서 맞아 죽었는데, 때린 놈이 다쳤거나 말거나 무슨 소용입니까? 만약에 우리나라 어떤 회사에서 근로자가 근무 잘 하다가 이런 꼴을 당했다면, 요즘처럼 정부나 정치가들이 회사도 많이 다쳤으니 대강 하라고 근로자를 못 본채 하겠습니까? 나라를 위해 밤잠 못자고 정부에서 시키는대로 하다가 산화한 아까운 생명들을 이렇게 허술히 대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만약 정치인들의 자제들만 이번에 전사했다고 해도 이렇게 허술히 할까요? 이제 우리도 선진국입니다. 국민을 괴롭히는데 인용하는 선진국 제도만큼이나 국민을 위하는 선진국 제도도 좀 가져오면 안될까요?
나에게 비치는 나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라야 상대방에 진실한 내가 비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도 이제는 자신에게 자신을 비추어 보는 그런 사람을 사랑하고 키워야 할 것입니다. 아무도, 비록 내 형제라도 결혼을 하고 나면 나를 나처럼 지켜주기가 어렵습니다.
항상 즐겁고 건강한 달리기 생활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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