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시대 새 풍속도 "키즈산업 불황무풍"
비혼모…명품키즈…왕자를 키운다
‘아이를 원하지 않는 남자, 비(非)혼모, 교육은 생후 직후부터….’
저출산 현상의 고착화에 따른 새로운 트렌드들이 속속 자리잡아가고 있다. 기존 틀을 거부하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면서 비혼모(법적으로 혼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산을 한 여성)는 곳곳에서 나타나는 추세다. 동네 산부인과에서는 아이 울음소리가 그친 지 오래이고 하나뿐인 내 자식을 최고로 키우겠다는 부모들이 늘어나면서 유명 산부인과나 ‘키즈(Kids·어린이)’산업은 불황의 무풍지대다. 특히 학교에서 치맛바람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정부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각종 출산 장려책을 쏟아내고 있고, 한 민간 경제연구기관은 독신자들에게 불이익을 주기 위한 ‘독신세(稅)’ 도입을 이색적으로 제안하고 있지만 출산율 저하 현상을 돌려 놓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기존 틀은 싫다=경기 고양에 사는 최모(31·여)씨의 호적에는 생후 1년 된 아들이 자신의 성(姓)을 따르고 있다.
법적으로 아들에게 아빠가 없다. 최씨는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낳은 아들의 출산과 육아 문제를 전적으로 자신이 책임지기로 했다고 한다.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생물학적으로 아이 아빠가 되는 사람이 독신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아빠의 선택을 존중했기에 그는 불만이 없다. 그러나 아이는 갖고 싶었다.
이모(33·여·서울신대방동)씨는 결혼하면 가부장제에 순응해야 하기 때문에 결혼을 ‘젊음의 덫’으로 여기고 있다. 남자 친구는 결혼을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이씨는 끝까지 거부했다고 한다.
이씨는 “가부장제 전통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항의하고 있다”며 “더 이상 ‘출산 파업’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고 말했다. 여성에게 불평등한 사회가 저출산을 부추겼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동네 산부인과는 애 울음소리가 ‘뚝’=서울 성북구 삼선동 S산부인과 원장 박모(58)씨는 아이 울음소리를 들은 지 오래됐다.
박씨는 “임산부들의 발길마저 끊어진지 오래”라며 “병원에서 아이들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때는 부인병을 검진받기 위해 할머니를 따라온 손자와 손녀들이 울 때뿐”이라고 저출산에 따른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아이를 하나만 낳는 세태 때문에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를 ‘최고’로 해주고 싶다 보니 시설 좋은 대형병원을 선호하는 것 같다”며 “동네 산부인과는 문을 닫을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반면 유명 산부인과는 매주 토요일만 되면 맞벌이 부부로 발디딜 틈이 없다. 부유층이 몰려 사는 서울 강남 한 병원 산부인과는 하루 평균 170여명을 진료할 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병원 측은 “병원 인근뿐 아니라 경기도에 사는 임산부들도 이곳을 찾는다”고 귀띔한다. 이 병원은 리모델링(구조변경) 공사에 지난해 200억원을 쏟아부었다. 병원 관계자는 “단 한번뿐인 출산을 기념하고 싶은 산모들로 (병원이) 유명해지고 있는 것 같다”며 “저출산 시대지만 우리 병원은 ‘흔들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내 아이는 특별하다=영유아 대상의 보험상품은 단연 최고 인기다. 지난해 4월부터 올 3월까지 D생명의 한 어린이보험 매출액은 250억여원. 이 상품은 임신 4개월부터 가입할 수 있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병까지 보장해주기에 신세대 주부가 주요 고객이다. 홈쇼핑 등을 통해 조부모 등이 가입해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K생명은 지난해 5월 500여건의 교육보험(0∼10세 대상)을 유치했다. 이달 계약건수는 3500건으로 급상승했다.
보험사 관계자들은 “저출산 영향으로 자식의 건강이나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데 따른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명품 키즈’ 등장은 저출산이 낳은 대표적 현상이다. 내 아이에게 만은 돈을 아낌없이 쓰겠다는 신세대 부부들의 취향 탓이다.
중구 신당동 중앙시장에서 유아복 매장을 20년 넘게 운영한 신모(63·여)씨는 “백화점에서 파는 유아복과 시장에서 파는 옷이 품질 면에서 거의 차이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요즘 젊은 엄마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며 “한벌에 수십만원 하는 비싼 옷을 입히는 게 사랑인 줄 안다”고 씁쓸해했다.
극심한 불황에도 키즈 산업은 ‘나홀로 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관련 시장 규모는 2003년 10조원에서 올해 15조원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신세계백화점의 한 관계자는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고가의 유아용품 판매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교육은 태어나자마자=우리나라 부모들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다. 특히 저출산으로 부모들이 아이의 교육에 관심을 가지는 시기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이 때문에 영유아 교육 프로그램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영유아 전문학원 G사의 생후 3개월짜리 젖먹이를 대상으로 한 놀이 프로그램은 아기의 운동과 감각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고안됐다. 유아 전문미술학원 Y사의 교육프로그램은 만 2세부터 신청할 수 있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가는 데 들어가는 돈은 월 7만∼8만원.
15개월 된 아들을 하나 둔 주부 홍모(31)씨는 “예전에는 자식 여러명 중 한명이라도 성공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딱 한명밖에 없는데 투자에 열을 올리는 것은 당연하다”며 “어린 시절 교육이 중요하다는 데 우리 애만 뒤떨어지는 것은 싫다”고 말했다.
조동석·장원주·정진수 기자
dsch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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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세계]"결혼은 싫어도 아이 양육만은 특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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