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Big) 3'라는 말은 산업계에 많이 쓰이는 용어다. 자동차.휴대전화.백화점.증권시장.생명보험 등의 업계 선두권을 가리킬 때 많이 쓰인다.
건강보험에도 빅 3가 등장했다. 산업계에서는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건강보험에는 '국민 의료비 부담의 주범'이라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다. 식대, 2~3인실 병실료, 선택진료비(특진료)를 빅 3로 부른다.
국립암센터 원무팀 이원희씨. 그가 속한 원무팀은 하루에 암 환자 700~800명의 수납을 처리한다.
"최근에 암 환자에 대한 건강보험 보장성이 올라갔다고 하지만 환자들이 체감하지 못하고 있어요. 비(非)보험 진료비를 줄여 달라고 요구하는 환자가 많습니다."
이씨가 지목한 대표적인 비보험 진료비가 빅 3다. 암 환자 부담의 34%를 차지한다. 보험이 안 돼 환자가 전액 부담한다. 나머지 비보험 진료비는 빅 3에 비해 많지 않다. 빅 3 때문에 건강보험증이 진료비 할인증 신세가 됐다. 중병에 걸린 환자들은 적금 깨고 집 팔아 병원비를 대고 있다.
집도 적금도 없는 사람은 중도에 치료를 포기하거나 기도원으로 가기도 한다. 오죽했으면 중환자 치료비를 모금하는 '사랑의 리퀘스트'라는 TV 프로가 인기를 끌까. 이런 게 다 빅 3 때문이다.
정부가 이달부터 암 환자 법정본인부담금률을 내렸지만 환자의 체감도가 낮은 이유는 보장성 강화 정책이 핵심에 접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빅 3의 보험 적용은 내년에 시작된다. 6월 말 정부가 내놓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일정표에 따르면 식대는 2006년에, 2~3인 병실료는 2007년에 보험을 적용하도록 돼 있다. 특진료는 개선위원회를 만들어 논의 중이다. 현재 암 진료비의 53%를 환자가 내고 있지만 2007년에는 25%만 내게 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필요한 돈은 보험료를 올려 조달하도록 돼 있다. 불황으로 주머니 사정이 가뜩이나 안 좋은 마당에 보험료를 올리려느냐는 반발이 있을 수 있다.
건강보험은 건강할 때 보험료를 냈다가 아플 때 혜택을 보는 제도다. 건강한 사람들이 아픈 사람을 돕는 사랑이 깔려 있다. 독일의 총리 비스마르크가 1883년 의료보험을 시작한 이유도 노동자들의 질병 위험을 사회가 나누기 위해서였다.
우리 선조들의 계나 향약의 상부상조 정신도 건강보험에 깔려 있다.
건강보험은 세금으로 운용되는 영국의 국민보건서비스(NHS)제도와는 다르다. 국고나 담뱃값에서 일부를 지원하지만 주요 재원은 보험료로 충당한다. 가입자들이 소득의 4.3%를 보험료로 낸다.
2000년 7월 의약분업을 시작하고 건강보험을 통합하면서 소득의 2.8%이던 보험료율이 올해 4.3%로 가파르게 오르긴 했다. 덕분에 지난해 1조6000억원의 흑자를 냈고 올해도 흑자가 1조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암 환자 법정본인부담률 인하, 항암제 보험 범위 확대, 자기공명영상촬영(MRI) 보험 적용 등 올해 시행된 굵직굵직한 혜택들도 가입자들의 주머니(보험료)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우리 보험제도는 아직도 '저부담-저급여'라는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다. 감기와 같은 가벼운 병은 몰라도 암이나 뇌.심장 질환, 장기이식, 혈우병 등 중병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빅 3 때문이다. 어떤 때는 빅 3 비용을 포함해 전체 진료비의 70~80%를 환자가 내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노후 준비가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큰 병을 만나면 집안이 풍비박산난다. 노후 준비를 게을리한 일부의 얘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 될 수 있다. 아파트 팔아 전세로, 전세에서 월세로, 그것도 안 되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떨어진다.
과연 우리는 건강보험을 위해 충분한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의 보험료(4.3%)는 선진국에 비해서는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독일(14%).일본(8.5%).프랑스(13.6%) 등은 우리보다 월등히 높다. 빅 3의 환자 부담을 대폭 줄이려면 내년에 3.5%, 2007년에 6%의 보험료 인상이 필요하다.
조선시대 우리 조상은 혼인과 장례 등 일시적으로 많은 돈이 들 때를 대비해 혼상계를 운영했다고 한다. 힘들더라도 십시일반으로 보험료를 조금만 더 부담할 수는 없을까. 그리했는데도 치료비 때문에 기둥뿌리 뽑는 일이 벌어지면 정부에 책임을 묻는 게 순서가 아닐까.
신성식 정책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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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중앙]암환자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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