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이명희(34.서울 마포구 당산동)씨는 지난해 말 립스틱과 매니큐어를 사달라고 조르는 여섯 살 배기 둘째 딸과 며칠간 말씨름을 벌였다. 이씨는 "유치원 반 아이들 중에 자기만 없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줬다"며 "음식을 먹기 전엔 꼭 립스틱을 닦아내도록 주의시키지만 아무래도 몸에 안 좋을 것 같아 항상 걱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얼짱 신드롬'이 확산하면서 어린이용 색조 화장품이 여자 어린이들 사이에서 인기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 한 대형 완구도매상의 경우 어린이용 메이크업세트.뷰티세트가 하루 평균 30개씩 팔린다. 어른을 흉내내 화장과 액세서리 등을 하고 다니는 초등학교 고학년생을 일컫는 '프리틴(Pre-teen)'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대다수 제품이 화장품이 아닌 완구류로 분류.유통되고 있어 안전성 관리가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시중에서 어린이용 장난감으로 판매되는 색조화장품의 납.메탄올 등 독성물질 함유량이 일반 성인용 화장품의 허용 기준치를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23일 밝혔다. 국립독성연구원이 식의약청의 의뢰를 받고 립스틱.매니큐어.볼터치 등 59개 제품을 검사한 결과다. 조사 결과 11개 제품에서 납이 검출됐다. 립스틱의 납 검출량은 평균 59.5ppm으로 일반 화장품 규격 기준인 20ppm을 3배 가까이 초과했다. 어떤 제품은 216.2ppm의 납이 검출되기도 했다. 공업용 알코올인 메탄올도 9개 제품에서 검출됐으며, 일부 제품의 메탄올 함량은 화장품 기준인 전체 용량의 0.2%를 넘었다.
식의약청은 일단 조사된 검출량이 '어린이에게도 위해하지 않은 수준'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국립독성연구원의 이효민 식의약품위해성팀장은 "3~13세의 어린이들도 화장품의 피부흡수력이나 독성물질에 대한 자체적인 해독 능력이 성인과 큰 차이가 없다"며 "어른처럼 매일 많은 시간 색조화장품을 이용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 정도 검출량은 위해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그러나 다량을 삼키거나 24개월 미만의 영아에게 사용할 경우 신경계 이상 등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부모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소비자보호원의 오흥욱 대외지원팀장은 "지난해 소보원이 어린이용 색조 화장품의 실태를 조사한 결과 특히 수입품들의 통관 절차가 엉망인 것으로 드러났었다"며 "정부가 이제라도 관련 법규를 정비해 어린이들 사이에 유해 화장품이 함부로 유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수.이원진 기자
대부분 화장품 아닌 완구로 분류'탁상행정'
어린이용 색조 화장품은 정부 부처들이 실상을 모른 채 관련 규정을 적용해 온 탓에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주로 산업자원부의 '품질경영 및 공산품 안전관리법'에 따라 공산품인 완구류로 분류.유통돼 왔지만 산자부에선 실제로 어린이들이 피부에 사용할 경우의 안전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화장품법에 따를 경우 제조.수입 시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신고하고 성분 규격기준과 안전성 심사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현행 화장품법 시행규칙에는 어린이용 제품류가 샴푸.로션.크림.오일 등으로 한정돼 있다. 그래서 일부 어린이용 색조 화장품 제조.수입 업체들은 변칙적으로 성인용 화장품법 기준에 따라 제품 허가를 받아 유통해 왔다.
식의약청은 앞으로 산업자원부와 관세청에 협조를 요청, 화장품 성분이 들어있는 장난감을 완구류가 아닌 화장품으로 분류해 안전관리를 할 계획이다. 이 경우 현행 화장품법에 어린이용 색조 화장품이 허용돼 있지 않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모든 제품의 제조.수입이 금지된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식약청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요즘 어린이들의 실상을 무시한 탁상행정"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제 목 : [중앙]'독'이 든 화장품 어린이가 바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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