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문제…바가지에 울고 오진에 멍든다
해마다 정기 건강검진을 받아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수술도 못할 정도로 큰 암에 걸렸다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적지 않다. 몸에 이상을 느껴 이른바 특정질환 전문병원이란 곳을 찾아가 정밀건진을 받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진단을 받았으나 6개월 내지 1년 후 역시 돌이킬 수 없는 상태의 암 판정을 받는 이들도 많다.
◇사람 잡는 오진=중견 무역회사 영업팀 간부 P씨(45). 2004년 8월 동네 내과의원에서 위 내시경검사를 추가한 건강검진을 받고,위암이 의심돼 조직검사까지 받았다. 그 결과는 제2기 위암 확진. P씨는 곧바로 모 대학병원에 의뢰돼 위 조영술과 CT검사를 받은 후 위의 60%를 절제하는 수술까지 잘 받았다.
문제는 보험회사가 그의 암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면서 시작됐다. 보험회사의 요청으로 수술 후 조직검사 결과를 확인해본 결과 위암이 아니라 심한 위염이었던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대학병원에서 의원의 조직검사 결과를 신뢰하여 수술 전에 조직검사를 다시 하지 않은 것이 이같은 사태의 결정적인 원인이 된 셈.
L씨(54)는 6년 전 종합건강검진을 통해 고혈압 진단을 받고 해당 병원에서 한두 달 간격으로 고혈압 약을 처방받아 복용해오다 뒤늦게 만성신부전증을 발견,최근 신장이식수술을 받았다.
정기적으로 고혈압 진료를 받았으나 만성신부전증이 합병할 때까지 신장이상 여부에 대한 추적검사나 신부전 발생 가능성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했을 뿐더러 그동안 몸이 자주 붓고 피로감을 호소했음에도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고 L씨는 호소했다.
◇불필요한 치료비 낭비=이렇게 중대 질병을 뒤늦게 진단한 사례말고도 우리 주위에는 무차별적인 종합건강검진의 오류 때문에 불필요한 치료비 낭비 사례도 많다. 건강검진 뒤 가짜를 진짜로 나타내는 ‘위양성’ 판정을 받고 2차 정밀검사를 요구받거나 있는 질병을 없다고 나타내는 ‘위음성’ 판정으로 불필요한 치료를 받게 되는 경우가 바로 그것.
N씨(42·여)는 지난해 초 모 종합병원에서 위와 대장 내시경검사가 포함된 종합건강검진을 받고 이상 소견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으나 6개월 후 배변 시 항문이 아프고 출혈도 있어 다른 병원을 방문,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항문암 3기란 날벼락이 떨어졌다.
아무리 암세포가 고약하고 진행이 빠른 것이라 해도 건강검진을 받은 뒤 6개월만에 3기에 이를 정도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게 대장·항문병 전문의들의 지적. 따라서 이 경우 N씨가 이상소견이 없다는 건강검진 결과를 지나치게 과신한 나머지 사소해 보이는 위험신호를 애써 무시한 탓이 아니라면 건강검진을 한 병원에서 처음부터 검사를 잘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의료사고=건강검진 중 발생하는 의료사고도 적지 않다. 미혼 여성 Y씨(28·회사원)는 최근 한 종합병원에서 부인암 건강검진을 받으면서 미혼임을 알렸으나 담당 의사의 부주의로 처녀막 손상을 입었다며 병원측에 배상을 요구했다. 이같은 유형의 의료사고로 소보원에 조정신청을 한 사례가 지난 한해만도 12건에 이른다.
이해각 한국소비자보호원 분쟁조정2국 의료팀장은 “유방암이 의심된다는 내용의 유방촬영 검사결과를 영문 의학용어로 통보함으로써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수검자가 정밀검사 기회를 놓치고,결국 암이 온 몸에 퍼져 사망한 예도 있다”고 밝혔다.
이기수 전문기자 ks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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