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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조선]몸에 숨겨진 질병 찾으려면 |
용모가 반듯한 60세 신사 한 분이 복부초음파 검사를 받으러 왔다. 평생 병원 한번 안 갈 정도로 건강하게 지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교장 선생님이었다. 얼굴이 이유 없이 피곤해 보인다며 마누라 등쌀에 떠밀려 할 수 없이 왔다고 했다. 배에 초음파를 대자마자 아기 머리만한 간암 덩어리가 눈에 들어왔다. 평생 아이들을 잘 가르쳐야 한다는 일념으로 살아왔을 이 분이 간암으로 교편 생활을 접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차마 환자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위암·간암·신장암·유방암·갑상선암·자궁암 등은 뚜렷한 증상 없이 자라는 대표적인 암들이면서 한국인에게 흔한 암이다. 교장 선생님이 정기적으로 건강검진만 받았더라도….
가까운 친척 한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변에 피가 계속 보여, 치질이 심해지는 것 같긴 한데…” “얼마나 되셨는데요?” “석 달 됐지.” 그분은 그동안 치질이라는 자가 진단하에 좌약을 넣고 지내다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당장 대장내시경을 받게 했다. 직장암이 상당히 진행된 채로 발견됐다. 수술을 하고도 대변주머니를 배 밖으로 차고 다닐 신세가 됐다. 증세가 왔을 때 바로 검사를 받았다면….
40대 여자 환자가 유방에 멍울이 만져진다며 유방 센터를 찾아왔다. 유방초음파에서 크기가 작은 1기 유방암이 의심됐다. 즉시 조직검사가 필요하다는 권유에 그는 “그동안 아프지도 않았는데 설마 유방암이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벌여 놓은 사업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며 나중에 오겠다고 가버렸다. 석 달 후 그가 다시 왔을 때 멍울은 2배로 커져 있었다. 유방암이었다. 암세포가 겨드랑 림프절로도 퍼져 있었다. 그 사이 유방암이 2기로 발전한 것이다. 수술 범위가 커진 것은 물론 처음보다 좋은 예후를 보장받기 어렵게 됐다. 조기 발견의 행운(?)을 잡았건만….
위의 사례들은 모두 정확한 진단의 시기를 놓쳐서 낭패를 본 경우이다. 제때 진단만 됐어도 최소한의 치료로 최대의 건강을 지켜낼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몸속에 숨어 있는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는 방법에는 원칙이 있다. 지금 아픈 데가 있는가? 그렇다면 당장 증세와 관련된 진료 과를 찾아가라. 그것이 어느 과인지 모르겠으면 병원에 물어보면 된다. 요즘에는 대부분의 병원들이 이런 환자들을 위해 진료 과를 교통 정리하는 부서를 두고 있다. 증상을 파고들어야 진단의 밀도가 높아지기 마련이다. 또한 그렇게 해야 같은 검사를 받더라도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설명할 수 없는 피로감, 체중 감소 등 예전과 같지 않은 모호한 신체적인 문제가 있다면 건강 검진이 권장된다. 이때는 전문의 상담이 가능하고, 질 좋은 검사 기기가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 거기서 이상 소견이 발견됐을 때는 그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묻고 상담하라. 이후의 추가 조치는 의사의 권유를 믿고 따르라. 그것이 진단 시간과 비용을 아끼는 방법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아무런 이상이 없다면 이제 정기적인 검진을 받으면 된다.
우리 친정 집은 식구 여덟 명 중 아버지를 비롯하여 의사가 네 명 있다. 하지만 집안 식구 누가 아프거나 병에 걸리면 가장 앞장서서 적극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사람은 가정주부이신 어머니였다. 배운 게 많은 의사들은 ‘괜찮다’ ‘지켜보자’ ‘검사해보자’ 등 여러 의견이 많으나 어머니는 한결같았다. 당장 정확히 진단을 받으라는 것이다. 여기에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정수영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진료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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