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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심장병 사망자, 남성보다 여성이 많아” |
심장병은 적용 범위가 넓고 발병 위험도가 높은 질환이다. 당뇨, 고혈압 등 대부분의 성인병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어 잠재적 발병 그룹까지 포함하면 환자층도 방대하다. 가히 ‘한국인의 대표 질환’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그 동안 암 등 다른 질환에 가려져 제대로 된 진단과 평가가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 사실. 이와 관련, 지난 5월 30일 심장병과 관련된 주요 현안을 짚어보고 문제점과 대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정남식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심혈관 연구소장(심장내과), 안혁 서울대 의대 교수(흉부외과), 지선하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역학 및 건강증진학과) 등 3명의 심장병 전문가가 참석했다. 사회는 김철중 조선일보 의학전문기자가 맡았다.
김철중 한국인 사망률 1위 질환은 암이지만 일반인에게 가장 많이 노출돼 있는 질환은 심장병입니다.
지선하 순환기질환의 위험성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매년 발표하는 질환별 의료보험 급여비용 통계를 보면 잘 드러납니다. 2004년 한 해 순환기질환으로 인한 1년치 보험 급여비는 1조5000억원으로, 암으로 인한 급여비 1조4000억원보다 많았습니다. 순환기질환 보험급여는 4년 전에 비해 37% 가량 증가, 같은 기간 전체 급여비 증가율(약 15%)을 2배 이상 초과했습니다.
김철중 지난 수십 년간 심장병 환자 발생 건수가 줄어든 줄 알았는데요.
지선하 순환기질환으로 인한 전체 사망률은 다소 줄었지만 대표적인 심장질환의 하나인 허혈성 심질환 사망률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1981년부터 2004년까지의 사망률 추이를 살펴보면 노령화에 의한 자연 발병률을 제외하더라도 1981년 인구 10만명당 2~3명에 불과했던 사망자 수가 2000년 이후 27~28명까지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여성 순환기질환 사망자 수의 증가입니다. 남성과 여성 사망자 수는 1992년 역전되기 시작해 10년 이상 여성 사망자 수가 남성을 앞서고 있습니다. 뇌졸중 등 사망으로 직결되는 순환기질환의 발병률은 줄어들었지만 예비고혈압(prehypertension) 증세를 보이는 환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김철중 한국인에게 적용되는 순환기질환 관련 위험 요인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지선하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1999년 순환기질환을 일으키는 위험 요인을 기여위험도, 즉 해당 질환 발병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 분류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이에 따르면 고혈압(34%), 흡연(26%), 총 콜레스테롤(5.8%), 당뇨병(2.5%) 등이 순환기질환의 주요 위험 요인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01년 10세 이상 남녀 806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고혈압 유병률(인구 1000명당 환자 비율)은 29.8%에 이릅니다. 성별로 구분하면 남성 환자(34.4%)가 여성 환자(26.5%)보다 많습니다. 이를 전체 인구로 환산해보면 약 1265만명이 고혈압을 앓고 있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고혈압 유병률보다 심각한 것은 치료율입니다. 고혈압 환자로 추산되는 1265만명 중 자신이 고혈압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480만명밖에 안 됩니다. 그 중에서 고혈압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은 152만명, 치료를 통해 자신의 혈압을 조절하고 있는 사람은 20만명에 불과합니다.
정남식 흡연도 큰 문제입니다. 최근 20년 사이 성인 흡연율이 크게 줄긴 했지만 그것이 현재 발병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닙니다. 10~20년 후에나 감소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재 남녀 흡연율이 줄었다고 해도 순환기질환의 발병 위험이 줄어든 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 밖에도 비만도와 총 콜레스테롤, 내당혈당장애, 당뇨병 등 심혈관질환을 유발하는 모든 위험 요인이 최근 10여년간 유의미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김철중 예비고혈압이 심혈관질환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궁금합니다.
지선하 5월 27일 열린 고혈압학회에서 예비고혈압에 대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이에 따르면 혈압이 전체 순환기질환에 주는 기여 위험도는 34%였는데, 이 중 예비고혈압에 해당하는 구간에서의 기여 위험도가 13.2%로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고혈압 치료와 함께 예비고혈압 관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김철중 실제 심장병으로 흉부외과 수술을 받는 환자가 많습니까?
안혁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치료가 필요한 절대환자 수는 늘었지만 여러 가지 치료법이 가능하기 때문에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많아진 것은 아닙니다. 상처를 내지 않고 치료할 수 있다면 그렇게 가는 게 세계적인 추세이지요. 수술은 다른 모든 치료법을 다 동원한 뒤 가장 마지막에 시술하는 치료 수단입니다.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은 대체로 고령자가 많고 혈관이 거의 막혀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요즘엔 젊은 환자도 꽤 늘어났습니다.
정남식 수술 이외의 치료 시스템이 발달해 수술 건수가 급증하진 않았지만 ‘일시적 중지’일 뿐입니다. 10~20년 후엔 해당 환자들 대다수가 다시 수술 대상이 되지요. 다만 최근에는 유전자 요법 등 새로운 치료 방법이 속속 개발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김철중 한국인이 특별히 유의해야 할 심장병의 위험 요인이 있습니까?
정남식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심장질환 자체가 서구형 식습관에서 비롯됐기 때문입니다. 위험 요인들도 대부분 옛날의 한국인에게는 나타나지 않았던 것들이지요. 다만 젊은 환자 그룹의 콜레스테롤 분포는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여 주목할 만합니다. 이들의 혈관을 분석해보면 총 콜레스테롤 수치에는 큰 변화가 없는 대신 ‘좋은 콜레스테롤’의 수치가 낮고 ‘나쁜 콜레스테롤’, 즉 입자가 작고 밀도가 높은 콜레스테롤이 밀집돼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종적 차이와 운동 부족, 대사증후군 등이 원인인 것으로 분석되는데요. 담배를 피우고 혈압 높고 운동량이 적은 젊은 환자에게 이런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이 경우, 혈관이 서서히 막히므로 일반 검사로는 변화가 쉽게 감지되지 않으며 정밀 검사를 거쳐야 밝혀낼 수 있습니다.
김철중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살 수 있었는데 심장병에 대한 무지로 안타깝게 죽는 경우가 있나요?
안혁 그럴 수도 있지요. 그렇지만 대개 그런 환자들은 내과를 먼저 방문하기 때문에 그런 환자를 수술실에서 보게 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정남식 돌연사의 원인 중 약 90%가 허혈성 심장질환입니다. 응급실에 실려왔다가 그 자리에서 사망하는 경우도 많지요. 환자 중에는 기업체 사장 등 겉보기엔 멀쩡한 사람이 많습니다. 환자들을 인터뷰해 보면 그런 병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지난 20년간 알게 모르게 환자 수가 20배나 급증한 것도 심장병에 대한 환자 스스로의 지식 부족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최근 개그맨 김형곤씨 등 유명인이 돌연사하면서 반짝 관심을 끌었지만 금세 다시 잊혀지고 있지 않습니까.
김철중 심장병을 제대로 예방하려면 어릴 때부터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남식 심장질환 예방교육은 이르면 이를수록 좋습니다. 10세 이전부터 증상이 나타나 20대와 30대에 발병할 수도 있습니다. 소아비만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혈관이 조금씩 좁아지다가 갑자기 막혀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를 막으려면 무엇보다 동물성 지방의 섭취를 줄여야 합니다. 심장병 환자의 60%가 이미 반쯤 혈관이 좁아진 상태입니다. 이런 경우, 운동을 해도 문제 없을 정도로 멀쩡하다가 별안간 증세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혈관은 눈에 보이지 않아 가늠할 수도 없지요. 죽처럼 물컹한 지방 덩어리가 갑자기 혈관 속에서 지뢰처럼 터지면서 심근경색이나 급성 관동맥증후군 등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김철중 암이나 다른 질병에 비해 심장병은 대중적 인지도가 낮은 편입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지선하 국가적 차원에서의 홍보와 계몽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공익광고 등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홍보수단을 조금만 활용하면 상당수의 심혈관질환을 막을 수 있습니다.
안혁 단적인 예로 국립암센터는 있지만 국립심장병센터는 없지 않습니까?
정남식 암 환자가 1주일 입원한다고 해서 증세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지요. 그러나 심장병은 발병 후 빠르면 2시간 이내 응급 처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생명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최근 20년간 환자 발생 추이를 봐도 심장병 환자 증가율은 암 환자 증가율을 크게 앞서고 있습니다. 더 큰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예방이 필요합니다.
김철중 단순한 홍보 이상의 ‘무엇’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정책적으로 도입할 만한 제도는 없나요?
지선하 미국의 경우, 심혈관질환의 기본 위험 요인 분석만으로 진단 가능한 패키지 검사와 보험 제도가 개발돼 있습니다. 이를 통해 10년 내 발병 확률 20%인 환자에게는 치료 처방을 해줍니다. 1년 내 발병 확률 3%인 환자들은 고위험군으로 분류, 특별 관리됩니다. 그러나 이 제도를 그대로 수입할 수는 없습니다. 최근 중국과 일본에서 미국 제도를 검토한 결과, 동양인에게는 잘 맞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루 빨리 한국인에게 맞는 심혈관질환 측정 방식을 개발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 순환기학회에서는 2008년 학회 설립 50주년을 맞아 조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정남식 어릴 때부터 위험 요인에 노출되면 혈관 손상이 그만큼 빨리 진행돼 50대 이후에 발병하는 사람보다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전반적 생활 개선 습관이 사회적으로 이슈화해 연중 캠페인으로 진행돼야 합니다. 이를테면 식품업계는 제품 표시 성분을 의무화하고 학교는 초등 저학년 때부터 식단관리를 통한 체중조절 등 종합적인 생활개선 프로그램을 도입, 교육시켜야 합니다. 청소년 흡연 방지를 위한 노력도 시급합니다.
김철중 미국 댈라스에 있는 미국건강협회(American Health Association)에 갔을 때, 심장병 가이드북을 발행하고 전문강사를 양성하는 등 예방 프로그램이 탄탄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제 국내에도 심장병 관련 공익 단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지선하 성격은 좀 다르지만 순환기학회가 미약하나마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학회’라는 특수성 때문에 이제까지는 국민에게 친숙하게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학술단체에 대한 지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민간 계몽 단체의 설립입니다. 국민을 이끌 수 있는 정책을 세우고 지원하는 민간단체를 마련해 국민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김철중 심장병 발병이 의심되는 사람이 지금 당장 취할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정남식 가장 정확한 것은 병원을 방문, 관련된 위험 요인을 모두 평가하는 것입니다. 최근엔 멀티채널 CT, MRI, 초음파 등 직접 혈관을 들여다보지 않고도 진단 가능한 측정 방법이 많이 개발돼 있습니다. 특히 멀티채널 CT는 비용 대비 효과가 비교적 좋습니다. 그러나 면밀한 검사를 하려면 아무래도 돈이 많이 듭니다. 따라서 증상이 발견되기 전인 어릴 때부터 위험 요인에 노출되지 않도록 생활 습관을 개선하는 것이 제일 바람직합니다.
김철중 심장병 발병 여부를 판정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있습니까?
정남식 아직 표준화할 만한 기준이 마련돼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방사선 진단은 방사선에 노출될 위험이 있어 바람직하지 않고 운동 부하 검사 역시 정확도가 65% 정도로 낮아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정밀 검사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지선하 대부분의 사람은 이상징후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병원을 찾지 않는데, 그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습니다. 예방 차원에서 자가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마련된다면 환자 발생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남식 결국 문제는 ‘비용 대비 효과’로 귀결됩니다. 단순히 발병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비싼 돈을 들여 모든 검사를 다 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김철중 심장병 증세로 병원을 찾은 환자들이 재방문하는 경우가 많습니까?
안혁 경우에 따라 다른데, 흡연이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큽니다. 특히 연세 드신 분의 흡연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흡연은 다른 위험 요인과 결합해 상승 효과를 일으킬 수 있고 흡연자 이 외에 주변 사람에까지 피해를 입힐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정남식 예를 들어 1980년대에 심장병 위험 요인에 노출돼 있던 사람의 경우, 지금에서야 병이 발현될 수도 있습니다. 간접 흡연 등이 치명적인 것도 그러한 잠재적 위험 때문입니다.
김철중 심장병 관련 국민건강보험수가 체계의 개선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안혁 이번 기획의 가장 큰 목적이 그것입니다. 암의 경우, 국민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완벽한 지원을 해주지만 심장병은 그렇지 않은 실정입니다. 정책적 배려가 필요합니다.
김철중 심장병에 대한 인식이 많이 일반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잠재 그룹은 방치돼 있는 실정입니다. 이들을 끌어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선하 미국 미시간대학 연구소에서 30년간 GE 근로자들의 건강관리를 대행한 적이 있습니다. 대학 측은 매년 근로자와 그 가족의 심혈관질환 위험 요인을 측정하고 스트레스 관리를 포함한 종합 예방 프로그램을 실행했습니다. 금연 교육과 혈압 조절 등도 병행했지요. 그랬더니 의료비 절감 효과가 뚜렷이 나타났습니다. 그 결과는 책으로도 발간됐습니다. 우리도 직장 단위, 지역 단위로 병원에 가기 전 ‘건강할 때 건강을 지켜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합니다.
안혁 미국 같은 나라는 심장병 잠재 그룹의 예방 처치에 수조원의 예산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핀란드 역시 질병 예방 프로그램에 드는 예산을 전액 보험 처리하고 있고요.
김철중 심장병 예방에 소요되는 예산 지원 문제도 해결되어야겠군요.
정남식 현재 실시되고 있는 6대 암 예방 프로그램에 준하는 심장병 예방 체계가 갖추어져야 합니다.
안혁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암 인구는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혈관질환은 돌연사 비율이 높은 만큼 암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선하 50대 이상에서 주로 발병하는 암에 비해 심장병 사망 인구의 연령은 낮은 편입니다. 따라서 경제 인구 확보 측면에서도 혈관질환 예방은 더욱 중요합니다.
김철중 현재 국민건강보험관리공단에서 실시하고 있는 건강검진 체계에도 손질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안혁 현재 피부양자의 경우, 40세 이상부터 검진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심장병의 발병 위험 요인이 어릴 때부터 발현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대상 연령을 하향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미리 위험군을 걸러내 적절한 치료를 통해 구제할 수 있습니다.
김철중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정남식 심장병을 유발하는 위험 요인은 대부분 일명 성인병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습니다. 성인병은 명칭을 ‘생활습관병(life style disease)’으로 바꿔야 합니다. 더 이상 성인에게만 발생하는 질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심장병의 위험을 알리고 예방하는 일은 늦은 감이 있습니다. 더 이상의 위험을 방치해선 안 됩니다. 지금부터라도 신속하고 종합적인 대응을 시작해야 합니다.
정리=최혜원 주간조선 기자(happyend@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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