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먼 친척으로부터 다리 수술을 받아야 하니 큰 병원을 좀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다리에 동맥경화가 심하게 와서 혈관을 갈아 끼우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벌써 4~5년 전부터 조금만 걸으면 다리가 경련을 하듯 아파 오래 걷지 못했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최근 도무지 걷지 못할 정도로 악화됐다고 했습니다. 병원을 소개시켜주며 저는 “심해지면 나중에 다리를 잘라야 하는 수도 생기니 당장 담배를 끊으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실제로 중년 이상의 남성들 중에는 다리가 묵직하고 아파 오래 걷지 못한다는 분이 많습니다. 주로 담배를 많이 피우는 사람, 뚱뚱한 사람, 고지방식을 즐겨 하는 사람들이 이런 증상을 많이 호소합니다. 다리가 아파 잘 걷지 못하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겠지만 만약 1)걸을 때는 아프지만 쉬면 낫거나 2)항상 다리가 저리고 찌릿찌릿하고 힘이 없거나 3)다리나 발이 항상 차갑거나 4)다리나 발의 일부 피부 색이 검게 변했거나 5)다리의 털이 자꾸 빠져 없어지거나 6)다리 피부에 탄력이 없어지거나 7)다리나 발의 상처가 잘 낫지 않거나 8)발이나 발가락이 쉴 때도 타는 듯한 통증이 있는 경우에는 ‘말초동맥질환’ 또는 ‘하지허혈증(下肢虛血症)’을 의심하고 치료를 받아 봐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위에 열거한 증상 중 두 세가지 증상이 나타난다면 말초동맥질환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말초동맥질환 또는 하지허혈증이란 다리 혈관의 동맥경화로 혈관이 좁아지면서 피가 잘 통하지 않아 생기는 병입니다. 관상동맥이나 뇌동맥에 동맥경화가 생기면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이 생기듯이 다리의 동맥에 경화가 생겨 다리의 통증이 유발되는 병입니다.
아시다시피 혈관의 내벽이 딱딱하게 변하는 동맥경화는 흡연,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이 위험요인입니다. 이와 같은 만성 질환자들이 폭증하면서 동맥경화로 인한 뇌졸중과 심근경색증 환자가 크게 늘고 있는데, 하지허혈증도 같은 뿌리에서 생기는 병이므로 역시 크게 늘고 있습니다. 2001년 미국 조사에 의하면 70세 이상이나 흡연과 당뇨병이 있는 50~69세 인구의 13%가 다리 동맥경화 환자였는데, 우리나라도 비슷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뇌졸중이나 심근경색만큼 중하지는 않지만 다리의 동맥경화도 때로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동맥경화가 진행된 혈관을 갑자기 혈전(피딱지)이 막아 버리면 다리와 발 조직이 썩으면서 죽어, 심한 경우 다리나 발을 잘라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모든 병에서와 마찬가지로 하지허혈증도 조기 발견과 조기 치료가 필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하지허혈증 환자들이 단순한 근육통이나 관절염으로 여겨 한의원에서 침을 맞거나 물리치료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증상이 워낙 수개월에서 수년간에 걸쳐 천천히 나타나는데다, 처음엔 걷는데도 큰 불편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병의 초기 증상은 걸을 때 주로 장단지가 아픈 것입니다. 보통 한 쪽 다리가 다른 쪽 다리보다 더 아프며, 일정 거리를 걸은 후엔 꼭 증상이 나타납니다. 언덕을 오르거나 날씨가 추운 경우에는 증상이 더 빨리 나타나며, 휴식을 취하면 통증이 사라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일반적으로 예전에는 아무런 불편 없이 걷던 거리나 운동을 언제부터인가 휴식 없이는 할 수 없다면 이 병을 의심해 봐야 합니다. 병이 진행되면 걷지 않고 쉴 때도 통증이 생기는데, 이때쯤 되면 발이나 발가락에 구멍이 뚫리면서 썩는 궤양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를 방치하면 발이나 발가락을 잘라야 하는데, 특히 당뇨 환자는 다리 절단 위험이 높으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이 병을 진단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발목의 혈압을 재 보는 것입니다. 혈압계를 발목에 둘러서 나온 수치가 자기 혈압 수치의 80~90% 이하라면 일단 하지허혈증을 의심해 봐야 합니다. 이 경우에는 병원에 가서 혈관초음파, CT, MRI, 혈관조영술 등 정밀검진을 받아야 합니다.
일단 하지허혈증으로 진단이 되면 혈전이 생기지 않도록 피를 묽게 하기 위해 저(低) 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것이 좋으며, 당장 담배를 끊어야 합니다. 흡연은 혈관을 수축시켜 다리로 가는 혈액의 양을 더욱 감소시키기 때문입니다. 또 지방이나 콜레스테롤 많은 음식을 삼가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서 혈액 순환을 촉진시켜야 합니다.
병이 상당히 진행돼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대개 의료용 풍선이나 금속그물망(스텐트)을 넣어 좁아진 동맥을 넓히는 시술을 합니다. 동맥경화가 이 보다 더 심해 혈관을 넓힐 수 없는 경우에는 막힌 혈관을 정맥이나 인조혈관을 이용해 갈아 끼우는 ‘대퇴동맥우회수술’을 합니다. 혈관을 넓히는 시술은 부분 마취만으로도 가능하지만 우회수술은 입원을 한 뒤 전신마취를 하고 받아야 합니다.
한편 하지허혈증 환자는 심장의 관상동맥이나 뇌동맥의 동맥경화로 인한 뇌졸중과 심근경색의 가능성이 비교적 큰 편입니다. 따라서 하지허혈증이 있다면 심혈관 검사도 꼭 받아봐야 합니다.
/ 조선일보 의료건강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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