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박아무개(56·남)씨는 최근 시력의 변화는 없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꾸 여기저기 부딪치는 일을 겪자 괴이한 병에 걸린 것은 아닌가 하는 미심쩍은 생각이 들어 병원 안과 진료를 받았다.
박씨는 시력검사 등 기본적 안과 검사에서는 이상이 없었지만 눈으로 볼 수 있는 범위를 측정하는 시야검사에서 좌우 양쪽 끄트머리 쪽의 시야에 장애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과 의사 권유로 뇌 컴퓨터촬영을 한 결과 뇌하수체에서 종양이 발견됐다.
시야 장애를 일으키는 여러 원인 가운데 드물기는 하지만 뇌하수체에 생긴 종양이 커지면서 바로 밑에 있는 시신경을 누르는 사례가 확인된 것이다. 박씨는 현재 뇌하수체 종양 제거술을 받고 시야를 서서히 회복중이다.
중학생인 송아무개(15)군은 5개월 전 갑자기 칠판이 잘 보이지 않아 안과를 찾았다가 백혈병에 걸린 사실을 발견했다.
송군은 시력 감소 외에는 특별한 증상을 보이지 않았지만 안과 정밀검사를 한 결과 안구 가장 안쪽에 있는 망막에 백혈병으로 의심되는 이상 소견이 발견됐고, 혈액검사에서 백혈구 수가 크게 증가돼 있는 것으로 나타나 백혈병 확진을 받았다.
사람의 눈은 그 사람의 속내를 비춰볼 수 있는 ‘마음의 창’이라는 말이 있지만, 두 사람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눈은 신체의 건강 여부를 반영하는 ‘몸의 창’이라고 할 수도 있다. 눈에 나타난 증상을 통해 몸의 이상을 알아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시력이 갑자기 떨어지거나, 눈이 침침해지고, 안구 통증이 오거나, 눈이 충혈되고, 시야가 좁아지는 등의 증상들이 눈 자체의 문제에 국한돼 생기기도 하지만 상당수는 신체의 다른 부위에서 발생한 질환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학병원급 의료기관의 안과를 방문한 환자들 가운데 무려 30~40%가 눈에만 국한되지 않은 전신질환 또는 신체 일부에 생긴 질환 때문에 눈에 증상이 나타난 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한다.
안구는 바깥 쪽부터 외막(공막+각막), 포도막(홍체+모양체+맥락막), 망막의 세 겹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당뇨병·고혈압과 같은 질환에 의해 각각의 막에서 염증 또는 부종이 생기거나 혈관이 막히고 터지는 등의 증상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특히 망막은 시력을 좌우하는 핵심 부위로 고혈당, 고지혈 등 문제있는 혈액이 공급되거나 고혈압 등으로 피흐름이 정상적이지 않거나 막힐 경우 시세포와 시신경이 파괴돼 시력을 잃는 사태를 부를 수도 있다. 약 1억2천만개의 시세포가 모여 있는 망막은 우리 몸에서 신진대사가 가장 왕성해 단위조직당 산소요구량이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눈에 이상을 일으키는 대표적 전신질환인 당뇨병에 의한 망막병증은 일반적으로 당뇨를 앓는 기간이 길수록 생길 가능성이 높아, 유병기간 10년 이상이면 60~70%에서, 30년 이상이면 거의 모든 환자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또 당뇨망막병증은 혈당 관리에 소홀히 할 경우 조기발병해 더 빨리 진행된다고 한다.
망막은 시세포와 시신경이 집중돼 있는 황반과 주변부, 그리고 시신경이 한데 모여 빠져나가는 시신경유두로 구성돼 있다. 문제는 망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주변부에만 이상이 발생할 경우 시력 감소 등의 현상이 나타나지 않아 눈의 이상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종종 증세를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당뇨 환자들에겐 정기적 안과 검진이 필수적이다. 환자가 아니더라도 혈액검사 이전에 망막검사를 통해 당뇨병을 발견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눈이 쉽게 피로하거나 이상 증상을 느낄 경우 안과 검진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
고혈압도 망막에 변화를 일으키는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로 심하지 않을 때는 망막동맥이 가늘어지는 정도의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고혈압이 심해질 경우에는 시신경이 붓고, 망막 혈관이 높은 혈압을 견디지 못하고 터지거나 막혀서 눈속 출혈을 일으켜 영구적 시력 감소를 일으킨다.
피 속에 나쁜 콜레스테롤(엘디엘) 수치가 높아 동맥경화증을 앓고 있을 경우에도 망막 병증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뇌와 눈에 피를 공급하는 유일한 동맥인 경동맥의 혈관 벽에 나쁜 콜레스테롤이 달라붙어 혈관이 좁아질 경우 피 공급이 원활치 못해 망막이 창백해지는 망막허혈증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안과에서는 응급상황으로 두 가지를 꼽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망막에 신선한 피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망막중심동맥이 혈전에 의해 막히는 경우다. 이 동맥은 막힌 뒤 8시간이 지나면 시세포와 시신경이 모두 죽어 영구 실명을 부른다.
이밖에 백혈병, 빈혈, 림프종과 같은 혈액질환과 신체의 다른 부위에서 전이된 악성종양들도 망막에 출혈 등의 병증을 일으키고, 출혈된 혈액은 지방질 등으로 구성된 흰색의 삼출물을 망막에 남겨 시력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안영진 기자 young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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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한겨레]눈은 건강 들여다보는 ‘몸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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