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간 애연가인 김모씨(62)는 한달전부터 지속적인 기침과 함께 호흡 곤란을 겪고 있다.
환절기이고 가벼운 감기 증상도 함께 보인 터라 김씨는 별다른 의심없이 종합 감기약만 구입해 복용했다. 그러나 얼마전 호흡 곤란이 더 심해져 병원을 찾은 결과 단순 감기가 아니라 오랜기간 흡연으로 인해 생긴 만성폐쇄성폐질환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겨울이 성큼 다가오면서 아침 저녁 영하로 떨어지는 기온 때문에 감기에 걸리는 사람들이 많다. 보통 기침을 하면 감기에 걸렸다고 생각하지만 한달 이상 지속되는 기침을 하는 흡연자는 다른 질환을 의심해 봐야 한다.
일반적으로 기침은 감기라고 부르는 ‘상기도 감염’일 때 하게 되지만 실제 거의 모든 호흡기병에서 발생하는 증상이다. 즉 원래 나쁜 증상이 아니라,가래 등을 밖으로 배출하기 위한 신체의 정상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기침을 지나치게 많이 하거나 오랜기간 지속하면 단순 감기가 아닐 수 있다. 기침은 흡연을 하지 않아도 하루에 10회이상 하면 비정상적이지만,흡연자가 한달 이상 기침을 할 경우는 더욱 주의해야 한다.
자가 진단에 의해 감기약만 복용하면 자칫 기침만 완화하는 치료를 하게 되고 질병의 원인은 고치지 못한 채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은 흡연자가 감기로 오인하는 대표적인 질환 중 하나다.
◇방치하면 호흡곤란,전신 합병증 유발=COPD는 흡연 등에 의해 기관지가 좁아져 호흡이 곤란해지는 호흡기병. 흡연을 시작한 지 20∼30년 동안 자각증상이 없다가 폐기능이 50% 이상 손상된 후에야 정체를 드러낸다.
문제는 한번 손상된 폐 기능은 현대의학으로도 되돌릴 수 없다는 것. 특히 초기에 관리하지 않고 방치하면 말기에 기도 폐쇄로 인한 저산소증이 심해져 평상시에도 호흡 곤란과 피로를 잘 느끼게 된다.
또 산소가 잘 운반되지 못해 손,발가락의 끝부분이 부풀어 올라 곤봉 모양이 되기도 한다. 심한 경우 입술이나 손톱색이 푸르게 변하는 청색증이 나타나고,혈액에 이산화탄소가 많이 함유돼 의식까지 혼탁해질 수 있다.
이밖에도 이차성 폐동맥고혈압증 같은 심각한 합병증을 동반,밤에 누워서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심한 호흡곤란을 겪을 수도 있다. 살아 있지만 ‘사형 선고’를 받은 것과 다름없게 되는 셈이다.
◇하루라도 빨리 담배를 끊어야=흡연자가 COPD를 예방하거나 증상이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담배를 끊어야 한다. 금연이 빠를수록 폐 기능 감소 속도를 늦출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 폐 기능은 25세 이후 여성은 23㎖,남성은 30㎖씩 매년 감소한다. 그러나 흡연자는 평균 45㎖,담배에 민감한 사람은 연간 50∼90㎖씩 감소한다. 특히 폐 기능은 25세 때의 것이 이후 감소되는 속도를 결정하기 때문에 청소년기의 금연이 그만큼 중요하다.
◇호흡기 감염 예방대책 필요=정상인과 달리 COPD 환자는 독감이나 폐렴 등의 호흡기 감염이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증상이 급격히 악화될 뿐 아니라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증 같은 관상동맥질환을 악화시켜 사망률을 50%까지 증가시킨다.
따라서 독감 유행에 대비,하루라도 빨리 독감예방백신을 접종하고,폐렴구균에 대한 예방 주사도 5년에 한번씩은 맞아야 한다.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손을 자주 씻는 것도 필수.
또 독감,폐렴 등의 호흡기 감염 증세가 있을 때는 조기에 적절한 항생제 치료를 받아야 기도 손상을 예방할 수 있다. 적절한 때 가래를 배출해 기도를 깨끗이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생활 요법 큰 도움=COPD로 손상된 폐 기능은 회복은 어렵지만 치료와 함께 폐 기능을 강화시켜주는 생활 요법을 병행하면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다.
실제 장기 산소요법과 재활 요법으로 COPD환자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일상생활 중 호흡기를 자극하거나 폐 기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위험인자를 피하는 방법이다.
우선 겨울철 실내 난방기 사용 시에는 연소물질이 실내에 잔류하지 않도록 자주 환기시켜야 한다. 매일 5∼15분씩 3∼4차례 규칙적으로 걷거나 입술을 오므리고 숨쉬기를 통해 산소 이용 능력과 운동 능력을 높이는 것도 이롭다.
성 생활도 운동 방법 중 하나. 단 성생활을 시작하기 전 호흡 조절을 위해 미리 속효성 기관지 확장제를 흡입하면 응급 상황을 예방할 수 있다. 그밖에 충분한 영양 섭취는 폐 감염에 대한 저항력을 증가시킨다. 진한 색깔의 과일과 채소,현미 등 정제하지 않은 곡물은 폐기능 향상에 좋은 음식물이다.
가톨릭의대 강남성모병원 내과학교실 박성학 교수는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흡연자는 정기적인 폐기능 검사를 통해 조기에 COPD를 진단하고 전문의 지시에 따라 증상을 완화하는 약물을 꾸준히 투여하는 것”이라며 “약물은 급작스런 호흡곤란으로 응급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막고,폐 기능의 손상을 예방해 준다”고 말했다.
◇이럴 땐 전문의 진단을 받아라
①기침과 가래가 수개월간 지속되거나 감기가 잘 낫지 않는다.
②심하지 않은 감기에도 곧잘 호흡곤란을 느낀다.
③작은 운동량에도 호흡곤란이나 피로감을 쉽게 느낀다.
④가래의 색이 노랗게 변하거나 호흡곤란이 점차 심해진다.
⑤갑자기 기침과 가래가 심해지면서 고열이 난다.
⑥호흡곤란과 함께 머리가 아프고 의식이 혼탁해진다.
⑦가래에 피가 섞여 나온다.
⑧호흡곤란과 함께 입술이나 손발이 푸르게 변한다.
⑨호흡곤란과 함께 식은땀이 난다.
⑩호흡곤란과 함께 맥박이 빨라진다.
⑪누우면 호흡곤란이 심해지면서 얼굴이나 사지가 붓는다.
민태원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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