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 염증을 막아라.”
세균·바이러스 등 외부의 침입자들을 물리치기 위한 우리 몸의 중요한 방어기전의 하나인 염증 반응은 흡연, 비만, 노화, 유전적 소인 등에 의해 정상궤도를 벗어나 만성화되면 되레 몸을 망가뜨린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신호에서 “만성 염증이 심장병, 당뇨, 알츠하이머, 대장암, 알레르기 천식 등 인구의 고령화에 따라 늘고 있는 여러가지 만성질환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을 시사하는 연구가 잇따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염증 반응은 흔히 ‘몸 속의 화재’에 비유될 정도로 강력하다. 활성산소와 같은 ‘위험한 무기’를 자체 생산해 침입자들을 죽이는 과정을 통해 불이 난듯 고열을 발생시키고, 피부를 빨갛게 붓게 하는 등의 증상들을 일으키는데, 그 강도는 침입자들의 세기에 비례해 커진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손가락이 가시에 찔릴 경우 수십억 마리의 세균이 몸 속으로 침입하는데, 인체는 이를 제압하기 위해 백혈구의 일종인 대식세포 같은 면역세포들을 집결시키고, 면역세포들은 활성산소 등을 무기로 사용해 침입자들과 전투를 벌여 승리를 거둔 뒤 손상된 조직을 원상태로 복구하는 것을 뼈대로 한 염증 반응을 일으킨다. 이 반응을 요약하면 상처→지원요청→반격→전투→원상복구(그림)의 5단계다.
하버드의대 부속 브리검여성병원의 심장병 전문의인 폴 리드커 교수팀은 1997년 염증과 심장병과의 상관관계를 시사하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건강한 중년의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시(C)-반응성단백 수치가 가장 높은 군은 가장 낮은 군에 비해 향후 6년 사이에 심장마비를 겪을 가능성이 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시-반응성단백은 몸에 염증이 있을 때 간에서 생성되는 화학물질로 심각한 세균감염 때 10㎖에서 순식간에 1000㎖ 이상으로 급상승한다.
리드커 교수팀은 심장마비 환자들 가운데 절반은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 범위를 보인 점에 착안해 고지혈증 이외에도 심장병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들이 있을 수 있다는 가정 아래 연구를 진행해 이런 연구결과를 얻었다.
강석민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심장에 피를 공급하는 관상동맥 안에 붙어 있는 혈전을 분석한 연구에서 클라미디아균에 감염돼 염증반응을 일으킨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며 “심근경색, 심부전증 등에 대해서는 시-반응성단백 수치를 측정해 위험도를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이어 “혈관 내벽에 손상이 있을 경우 혈중 면역세포의 하나인 단핵구가 혈관 내피세포에 달라붙어 콜레스테롤을 잡아먹은 뒤 대식세포로 바뀌어 동맥경화반(플라크)을 형성한다”며 “동맥경화반에 혈소판이 달라붙어 혈전을 만들기도 하고, 동맥경화반이 터지기도 해 여러가지 심장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만성 염증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류마치스 관절염 같은 자가면역질환 분야에서 오래 전부터 깊이 연구돼 왔으나, 다른 질환들에서도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것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염증 반응은 궁극적으로 손상된 인체 조직을 원상복구하기 위한 것인데 오히려 몸을 파괴하는 쪽으로 바뀌어 멈추지 않는 게 자가면역질환이다.
유빈 서울아산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염증 반응이 질병에서 중요 요소라는 사실은 자가면역질환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며 “염증만 있는 경우에는 원상복구가 가능하지만 염증에 의해 손상된 조직은 복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이에 따라 “류마티스관절염 환자들에게 류마티스관절염을 완치할 수 있는 약이 없어 불을 완전히 끌 수는 없지만 불끄기 노력을 늦게 하면 할수록 몸은 더 망가진다고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뇨병의 경우 1920년대 인슐린이 개발되기 이전에는 아스피린 성분으로 항염증 효과가 있는 살리신산을 고용량으로 투약하기도 했는데, 이명·현기증·두통 등의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혈당을 떨어뜨린 점이 최근 재조명되고 있다.
많은 연구자들이 지방세포-인슐린-염증 3자 사이에는 복잡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밝혀내고 있다. 지방세포는 염증 반응에 관여하는 면역세포들이 분비하는 것과 비슷한 화학물질들을 분비하는 것으로, 시-반응성단백 수치가 높을 경우 당뇨병에 걸릴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각각 나타났다.
알레르기 천식의 경우 점점 성인이 된 뒤 발병하는 사람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은 세균·바이러스·꽃가루 등 각종 알러젠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특징을 보이기 때문에 치료의 초점을 염증을 완화하는 데 둬 일정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김윤근 서울대병원 알레르기내과 교수는 “염증 자체를 없애거나 조절하는 것보다는 자연치유의 한 과정인 염증이 왜 생겼는지 그 원인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며 “다만 지나치게 센 불이나 통제불능의 불은 조기에 진화하는 게 중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영진 기자 youngjin@hani.co.kr
도움말=강석민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 김윤근 서울대병원 알레르기내과 교수, 유빈 서울아산병원 류마치스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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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한겨레]‘만성 염증’이 만성질환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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