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우리는 (감염질병에 있어) 세계적인 위기 상황에 있다. 어느 국가도 이 위기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 어느 국가도 다가오는 (내성 박테리아의) 위협을 모른 체할 수 없을 것이다"
1996년 당시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던 히로시 나카지마의 경고이다. 끈질긴 박테리아의 생명력과 위험성을 강조한 말이었다. 이중 괄호에 들어 있는 '감염 질병에 있어'와 '내성의 박테리아의'를 각각 '테러확산에 있어'와 '극렬 테러리스트의'로 바꾼다면 이라크 저항군의 반격에 부딪혀 고전을 면치 못하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의회 연설쯤으로 들릴 수도 있다.
박테리아와 테러리즘을 연결하는 게 언뜻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기본성격은 유사하다. 또 이런 연결이 이라크 저항군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각인시킬 우려가 있으나 이같은 비유가 일방적 강압에 따른 심각한 후유증과 부작용을 설명하기 위해서라면 그 취지를 쉽게 납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의학 저널리스트 토머스 호이슬러는 「바이러스」(이지북刊)에서 항생제를 남용한 결과 신종 바이러스의 대대적인 반격을 받고 비틀거리는 현대의학의 현실을 드러내며 그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바이러스는 바이러스로 치료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놓는다. 이이제이(以夷制夷)인 셈이다.
현재 인류는 끝도 없이 쏟아져나오는 신종 바이러스로 곤경에 처해 있다. 사스, 에볼라, 에이즈, 구제역, 조류독감 등 이름조차 묘한 바이러스들이 차례로 나타나 인간을 공격한다. 의학계는 항생제로 대응해보지만 바이러스는 신종 바이러스로 반격을 가하고, 의학계가 다시 초강력 항생제로 재반격하면 바이러스는 역시 초강력 변종 바이러스로 맹공을 편다.
신종 바이러스들은 왜 생겨나는 걸까. 저자는 항생제를 남용한 결과라고 단언한다. 자업자득이라는 얘기다. 공격과 반격의 악순환 속에서 이제 인간이 기존의 항생제로는 퇴치할 수 없을만큼 바이러스들이 강력해졌다. 항생제가 바이러스의 내성을 키우고 변종을 양산한 결과 어떤 항생제에도 끄떡없는 슈퍼 바이러스의 등장까지 우려되는 상황이 왔다는 것이다.
이런 인간의 오만은 60여년 전에 이미 시작됐다. 1940년대 초, 페니실린이 개발되자 인간들은 박테리아를 단시간에 완전 정복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며 대환영했다. 일부에서 악성 바이러스를 천적 바이러스로 치유하는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 요법을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강력한 항생제인 페니실린 앞에서 고개를 떨군 채 역사의 뒤편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잠시 휴식을 취하던 박테리아들은 전열을 정비하고 더욱 강력한 모습으로 자신을 방어하고 영향력을 확대했다. 이들 박테리아는 내성과 변종이라는 신출귀몰한 전법을 구사해 기적의 신약으로 통하던 항생제들을 하나하나 제압한 것이다. 항생제들의 효능은 박테리아의 변신술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위력을 상실해갔다.
박테리아들의 서바이벌 게임은 매우 교활하다. 황색 포도상구균의 경우 페니실린 도입 10년 후 70%의 저항력을 갖더니 오늘날에는 95%의 저항력을 보유하기에 이르렀다. 다시 말해 약효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박테리아들은 인간의 몸 속에서 재무장을 서둘렀다. 특히 병원은 감염과 내성 강화를 위한 온실이나 다름없었다.
박테리아의 작은 돌연변이 하나가 야기하는 비용은 엄청나다. 캐나다의 항생제 전문가인 줄리언 데이비스는 '사이언스'지에서 "하나의 작은 돌연변이만으로 무려 1억달러 상당의 연구비가 허사가 될 때 너무 안타깝다"고 실토한다. 오늘날 새로운 약품 개발비로 5억달러가 투입되고 있으나 병원균 퇴치의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 마치 미국이 국방비를 늘려 세계 평화를 가져오겠다고 하지만 테러는 오히려 기승을 부리는 것과 같다.
그래서 저자는 관점을 바꾸자고 제안한다. 그 제안도 전혀 새로운 게 아니고 50여년 전에 폐기처분된 박테리오파지에 눈길을 다시 던져보자는 것이다. 항생제 같은 화학요법을 버리고 박테리오파지 같은 자연 치료에 기대자고 그는 강조한다. 농사에서 화학약품인 살충제와 살균제를 남용한 결과 내성만 길러주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천적을 이용한 자연 퇴치 방법을 이용하자는 주장과 맥락을 같이한다.
이런 박테리오파지는 이미 구미 선진국의 축산농가에서 세균소독 등에 사용되고 있다. 인체에 무해한 박테리오파지를 사용해 박테리아의 내성을 키우고 인체의 면역력을 약화시키는 치명적 단점과 실수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테리오파지는 특히 항생제로 내성이 생긴 박테리아에도 효과가 있어 더욱 주목된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 식품의약청(FDA)가 최근 박테리오파지 요법에 대해 '패스트 트랙'(기존 의약품이 부족할 때 실험의약품 투입)의 지위를 부여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는 단순히 질병에 그치지 않고 강력한 살상무기로 상대를 무력화시키려는 강대국의 군사전략 등 국가관계, 인간관계에도 응용해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무리한 강공이 결과적으로 부메랑으로 돌아와 자신을 치명적으로 손상시키는 일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서로 해를 끼치지 않고 너도 살고 나도 사는 박테리오파지 요법의 상생원리는 여기에도 적용된다고 하겠다.
id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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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박테리오파지 요법이 질병탈출의 유일한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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