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 성 일 : 2023.01.27 + 작 성 자 : 이동윤
+ 제     목 : 왜 부처님께서는 아직도 웃고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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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일에 대해 그것을 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한 적절한 설명을 항상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말한다. "삶이란 원래가 설명이 없는 법이야."라고.

그렇다. 우리 삶은 항상 절대적인 빛 속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그곳에 설명은 없다. 삶은 우리 인생 여정에서 하나의 신비로서 존재하며, 설명을 시도하는 순간 진짜 삶에 대한 설명을 놓쳐버리기 십상이다.

삶은 설명이 될 수 없는 개념이며, 설명은 그 자체가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으로 전락하고 만다. 우리에게 가장 해로운 일은 설명에 사로잡혀 어떤 자리에 고정되는 일이다. 뭐든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삶은 떠나고 우리 자신은 이미 죽어 있다.

그런 면에서 철학은 삶의 적이다. 이것은 하나의 역설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혹시 죽음은 설명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삶 그 자체는 설명될 수가 없다. 죽음은 끝이 난, 어쨌거나 완성된 그 무엇이고, 삶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삶은 언제나 그 여행길 위에 놓여 있지만, 죽음은 이미 어떤 지점에 도달해 있다. 어떤 지점에 도달해서 그것이 마무리되면 그것을 설명할 수 있고, 그것을 한정시킬 수도 있지만, 현재 진행 중일 때는 여행해야 할 미지의 것이 아직 남아 있다는 의미다.

과거는 알 수 있지만, 미래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과거는 이론으로 정리해 놓을 수 있지만, 미래는 이론화가 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언제나 열려있음 그 자체이며, 무한한 열림이다. 그러므로 설명을 시도할 때, 그 설명은 이미 죽은 것을 가리킬 뿐이다.

철학은 설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곳에는 생명력이 없다. 철학자들보다 더 많이 죽어 있는 사람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들에게는 생명력이 빠져나가고 없다. 삶은 이미 그들에게서 멀리 새어 나간 후일 뿐이다.

죽은 돌처럼 오그라든 두뇌들이라 혹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이론과 소음을 만들어 내지만, 그곳에 삶의 향기로운 음악은 없다. 많은 설명을 하지만, 손에는 단지 설명만 들려 있을 뿐, 설명은 꽉 움켜쥔 주먹과 마찬가지다.

삶은 하나의 펼친 손이다. 그 둘은 전적으로 다르다. 주먹이 닫혀있을 때는 그 안에 하늘이나 공기, 또는 숨쉴 공간은 없다. 움켜쥔 손으로 하늘을 움켜잡을 수는 없는 법이다. 주먹은 세게 쥐면 쥘수록 하늘을 놓쳐버릴 뿐이다.

하늘이 그곳에 있고, 손이 열려 있을 때, 그 때는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설명은 움켜잡는 것, 문을 닫는 것, 한정을 짓는 것이며, 그 때 삶은 우리로부터 새어나간다. 그런 면에서 웃음이 차라리 철학보다 더 위대하다. 웃음은 항상 과거가 아닌 현재 시제를 사용한다.

삶에 대해 웃을 때, 그때 우리는 삶의 본질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모든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들은 웃는다. 그리고 그들의 웃음은 시간이 지나서도 들릴 수 있다. 부처님께서 손에 들고 있는 꽃을 보고 제자 마하가섭이 웃은 이유다. 그 웃음이 지금도 들린다.

오늘도 흥겹고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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