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로 얼음 덩어리를 살살 쪼면 단단한 얼음 덩어리도 쪼개지고, 아무리 멋진 집이라도 전기가 누전되면 불이 난다. 휘발유가 떨어지면 비싼 새 차라도 멈추고, 기름이 떨어지면 등불도 꺼진다. 이런 일들은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좋은 생활 속 실제 예들이다.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남으로 저것이 생겨난다." 부처님의 연기에 대한 설명에 잘 맞는다. 연기법은 꼭 인과 관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물질과 물질 사이에도 그런 관계들이 얼마든지 있다.
수만 개의 부품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자동차는 부분들이 있을 때 전체가 있고, 부분들이 소멸하면 전체가 소멸한다는 부처님의 설명에 딱 들어맞는다. 여기서는 전형적인 인과 관계는 아니지만, 분명 어떤 의존 관계가 존재한다.
이런 관계들은 부분들로 이루어진 이 세상 모든 존재자에 해당된다. 종이 위에 여러 가지 물감으로 잘 그려진 그림은 정말 아름다운데, 이 아름다움이 물감에 의해 인과되지는 않았지만, 물감에 존재론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감이 잘 분포되지 않으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다는 점이 바로 이른 의존 관계를 뒷받침해 준다. 보통 인과 관계라면 원인과 결과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있기 마련인데, 분포된 물감과 그림의 아름다움 사이에는 아무런 간격이 없으므로 인과 관계는 아니다.
배고파 우는 아이에게 젖을 먹이거나 굶주려 배고픈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행위는 덕스러운 행동이지만, 이런 덕도 행위에 수반된다. 도덕적 가치로서의 덕이 행위 자체에 존재론적으로 의존해서 성립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식도 뇌의 신경전달물질이나 호르몬 등의 물질적 기반에 수반해서 생겨난다. 즉 미학적 가치나 도덕적 가치, 그리고 의식 같은 비정형적인 마음이나 기분들이 물질적 존재에 의존하는 수반적 관계도 연기법의 한 종류라 볼 수 있다.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관찰자의 속도에 따라 주어진 대상의 길이와 그것에 경과한 시간이 다르게 측정된다. 속도가 빠를수록 대상의 길이와 경과한 시간이 짧게 관측된다. 관찰자의 속도와 관측되는 대상 사이에 인과적 관계는 없지만 연기법으로 포섭된다.
물질계가 근본적으로 비인과적 연기에 의존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물질계의 모든 것이 주어진 물리 이론에 의해 그 존재와 속성이 결정된다는 점이 잘 보여준다. 이것인 시간과 관간의 존재와 속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뉴튼의 역학에서의 불변의 절대량으로서의 질량은 이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의 에너지와 상호 전환되고 속도가 오르면서 증가하는 질량은 같은 물리량이 아니다. 물질계는 주어진 배경 물리 이론에 의존해서 그 존재와 속성이 결정되는 것이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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