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은 다른 사람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고, 그런 상대의 슬픔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감정이다. 주역에서 선을 쌓는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의 여유가 있다는 의미이며, 선행을 행하지 못하여 선이 쌓이지 않으면 반드시 넘치는 재앙이 있다는 것이다.
이해와 연민은 어리석음과 수동성의 반대말이며, 매우 강력한 삶의 에너지원이다. 연민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수동적이고 나약하고 소심한 감정으로 여기고, 연민의 감정을 가진 사람이 불의에 저항하거나 도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해와 연민은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전사와 영웅들을 만들어냈으며, 세종대왕으로 하여금 한글을 창제하게 만들었다. 살아가면서 행동을 폭력적이지 않게 하고, 상대와 자기가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을 바탕으로 진정으로 강해질 수 있게 만든다.
살아가면서 화를 표출하거나 다른 사람을 벌주거나 비난하지 않게 만드는 원천이 바로 이해와 연민의 감정이며, 이것이 내 안에서 계속 켜져 있어야 불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이 생겨나게 된다. 불복종 운동을 이끈 간디가 좋은 예다.
간디는 폭탄이나 총을 사용한 적도, 정당을 가진 적도 없었지만, 분노가 아닌,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통찰과 연민의 마음으로 행동했을 뿐이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지금 현재 내 눈앞에 있는 그 사람이 아니라 지배하고 착취하려는 인간의 본성이다.
즉 다른 사람을 침략하고 지배하고 착취하려는 진짜 적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연민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사람을 해치지 못한다. 오히려 그런 지배와 착취에 대해 단호하게 저항한다.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줄 아는 것이다.
연민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어리석지 않으며 현명하고, 통찰력을 가지고 있어서 폭력을 묵과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혜로워진다는 말이다. 사랑에서 나오는 비폭력적 행동은 지혜가 있을 때만 가능한 법이다.
연민은 살아가면서 불필요한 고통을 피하고, 상식을 지킨다는 의미하기도 하는데, 우리가 천천히 의식을 집중하고 명상을 하면서 걷거나 달리면 많은 에너지를 만들고, 흔들림 없이 차분하고 고요한 마음을 갖게 해준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내린다면 그래도 계속 천천히 걷거나 달리면서 명상에 집중해야 할까? 온몸이 차가운 가을비에 흠뻑 젖고 있다면 그것은 지혜로운 행동이 아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비를 피해 걷거나 달리면서 명상을 하면서 즐거움을 유지할 것이다.
빗속의 명상이 바보짓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즐거운 운동 시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옆에 있는 사람을 무작정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기술이 있어야 하고 지혜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