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린다는 것은 더위와 추위, 바람과 비를 만난다는 것이다. 도시는 하루의 시간대나 계절, 그리고 햇빛이나 구름, 그리고 소나기로 인해 피로해지고 뜨거워지고 때로는 더욱 생기를 얻는 개인적인 신체적 상태에 따라 피부에 변화무쌍한 변화를 느끼게 된다.
비는 대자연이 보여주는 자기표현의 한 형식으로, 대자연의 원소들에 대한 도시의 승리가 일시적임을 상기시켜 준다. 비는 한 순간에 하늘과의 경계를 지워버리고, 물과 도시를 하나로 합쳐서 거리에서 사람들을 쫒아내고 잠시동안 신들의 공간으로 만든다.
비의 경험은 몸이 직접 겪는 경험이다. 물방울들이 얼굴을 때리면서 머리카락과 신발을 적신다. 그 물방울들은 맞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어린이들을 무서워 떨게 하며, 주자들은 서늘한 기분을 만끽하게 하고, 노숙자들을 얼어붙게 만들기도 한다.
비가 오면 우리는 물 웅덩이를, 하수구의 세찬 물살을, 쏟아지는 공사장 홈통의 폭포를 건너뛰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놀란 사람들은 이곳저곳으로 뛰어가며 빗줄기를 가른다. 내 몸이 설탕으로 만들어지지 않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즐기는 순간이기도 하다.
비는 도시 풍경을 휘젓고 색깔을 바꾸기도 하고, 공간을 어둡게 만들기도 한다. 평소의 판에 박힌 체면의식 같은 것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가장 뻣뻣하고 우월감에 넘쳐 있던 청춘남여들도 일체의 사교적 예의 따위는 잊어버리고 비 피할 곳을 향해 달린다.
비는 예의범절을 벗어난 여백의 공간을 만든다. 그렇지만 뜻하지 않은 장애물에 걸려 비틀거리거나 미끄러워진 도로에서 넘어지는 등 본의 아닌 실수를 우리는 미소와 더불어 공감하기도 한다. 평소에 쓰고 있던 우리의 가면을 벗겨 겸허한 인간조건으로 되돌린다.
비는 관례적인 형식을 깨고 더러 이외의 만남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비가 오면 우리는 공동의 적에 대항해 하나가 된다. 사람들은 대담하게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서로 말을 건네고 이야기를 나눈다.
어느 한 순간 사람들은 차라리 비가 대홍수로 변해버렸으면 하는 마음마저 생기고, 그런 극단적인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서로 화해하고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되기도 한다. 또 다른 곳에서는 태풍이 불 때마다 만나 빗줄기의 즐거움을 즐기기도 한다.
어느 여름날, 직사광선이 쏟아지는 가운데 갑자기 퍼붓기 시작한 소나기에 그것을 온몸으로 즐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혼비백산하여 전력으로 뛰어가는 사람도 있다. 소나기는 불과 몇 분 사이에 도시의 풍경을 바꾸어 버린다.
사정없이 퍼붓는 비 속을 뚫고 온몸이 푹 젖은 채 기분 좋게 걷거나 달리며 내 발이 어디에 놓이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맨땅을 찾아내려 즐겁게 노력하기도 한다. 오늘은 그런 여정 자체를 즐기고 있다.
어떤 때는 바로 앞에서 천둥 번개로 전기가 나가 암흑천지가 되어도 간간히 비치는 번갯불에 길을 더듬어 짐작하며 가는 그런 긴장감도 있지만, 잠시 동안의 어려운 한때의 경험이 도시 생활의 유별난 양념이 되어 영웧히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된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
다음글 : 
이전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