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내를 내가 의과대학 불교학생회장 때 강의실에서 있은 신입회원 환영식에서 만났다. 어떤 여학생이 들어오는데, "하늘에서 순백의 선녀가 내려오는 듯 어두컴컴한 강의실이 갑자기 환해지는 강한 후광을 느꼈다." 지금도 의아하게 생각하는 극적인 만남이었다.
우리는 사람의 한 부분만 본다. 마침내는 처음에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그 부분이 어리석게 보일 때도 있다. 상대의 눈동자 색깔에 반했다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자신의 삶이 누군가의 눈동자 색깔에 달려 있을 수가 있는가?
누군가 질문을 할 수 있다. 어떻게 자신의 삶이 누군가의 아주 조금 밖에 안 되는 눈동자 색깔의 색소 때문에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고. 그러나 그 작은 색깔의 색소 때문에 사람들은 낭만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영원토록 눈동자 색깔로는 살 수 없다. 하루 이틀 안에 그 색깔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잊어버릴 수도 있다. 그때 그 사람 앞에는 삶 전체가 놓여 있다.
우리 삶은 항상 부분은 곧 사라지고 전체가 다가온다. 그러면 자칫 불행이 다가오기도 한다. 신혼여행이 끝나기도 전에 삶의 불행이 시작되는 경우들을 종종 매스컴을 통해 접하는 경우가 그런 것이다. 상대의 전체를 바라보지 않았던 것이다.
마음은 전제를 볼 수 없다. 그것은 단지 표면만을, 얼굴, 외모, 머리카락, 눈동자, 걸음걸이, 말하는 방식, 목소리만 볼 뿐이다. 그것들은 부분이므로 결코 그 사람 전체가 아니다. 마음은 항상 단편만을 보며, 언제나 단펴적인 것들에 유혹당한다.
그 유혹되는 순간 전체가 따라온다. 전제는 멀리 있지 않다. 눈동자는 멀리 있지 않다. 눈동자는 독립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전체의 일부일 뿐이다. 눈에 유혹되면 그 사람 전체에 유혹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전체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마음은 아침에는 아침만을 보고, 저녁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어버린다. 그러나 모든 아침 속에는 반드시 저녁이 숨겨져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아침은 끊임없이 저녁으로 변해간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세상의 흐름이다.
세상을 멈출 수 있는 힘은 우주 어디에도 없다. 마음은 항상 지금 현재형이다. 절대로 전체를 볼 수 없다. 이것이 불행의 원천이다. 그래서 항상 부분에 유혹당해 전체를 놓치게 된다. 전체를 볼 수 있고, 그래서 그렇게 행동한다면 삶에서 결코 지옥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인생 70살을 살아보니 모든 사람들이 똑같다는 말이 그 말이다. 항상 자기 인생은 아침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녁은 절대로 오지 않을 것이라 걱정도 안 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이미 자신도 저녁 나절에 와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삶은 어떻게 배열하든,종교적인 사람은 언제나 전체를 볼 것이고, 세속적인 사람은 언제나 부분을 볼 것이다. 그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가까이 있는 것만 보는 사람은 멀리 숨겨져 있는 것은 보지 못한다. 거리가 그리 먼 것이 아니다. 가까이, 곧 일어날 것이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