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적에 산에 열심히 다닐 때 이야기다. 집을 떠나 능선길을 하염없이 걷다가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오면 추위를 이기기 위해 비박보다 그냥 마냥 걸을 때가 있었다. 추위와 어둠이 짙어지면 이러다 얼어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전신을 감쌀 때도 있었다.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광대한 한 산악 지역의 바위들이 많은 능선에서 해드램프나 손전등도 없이 어디다 발을 디뎌야 할지도 알 수가 없었다. 빠른 속도로 어둠이 짙어졌지만 미끌어지거나 비틀거리는 법도 없이 바위에서 바위로 건너뛰기도 잘할 수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어떤 직감적인 신기한 힘이 나를 사로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눈도 두뇌도 인도해주지 않는 가운데 어떤 미지의 의식이 작용하는 것이다. 나의 팔다리는 거의 기계적으로 움직이면서도 어떤 황홀함의 경지에 이른 듯했다.
사지가 그 고유한 내면적 지혜를 갖추고 있다는 느낌 같은 것이 나를 에워싸고 세상이 변함없이 이어지는 꿈과 같은 시간이었다. 바위 위를 한 발만 잘못 디뎌도 곧바로 황천길이 될 것만 같은 능선길에서 몽유병자처럼 태연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저녁에 상당히 먼 거리를 가기도 하면서 마침내 한 밤 중의 어둠을 지나 새벽의 어스럼을 맞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의 희열은 지금도 몸을 뜨겁게 만든다. 그 순간에 저 멀리 앞쪽 하늘에 별이 하나 나타났다.
그 별을 바라보며 방향을 잡고 여전히 그 마법 같은 힘으로 능선 전체를 주파하고 있었지만 한 번도 발이 빠지거나 미끌어지는 법이 없었다. 나중에서야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정신통일에 의해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한동안 지나왔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정신과 의식, 또는 혼을 어디 한 가지 화두에 집중함으로써 자아의 이원성이 소실되고 개인이 나 자신의 명상의 대상과 하나가 되는 정신통일, 즉 생명의 에너지인 어떤 기운(氣)가 기능을 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런 황홀경에 빠져 위험도 자각하지 못한 채 가볍고 빠르게 걷는 것이다. 나와 나의 걸음이 서로 구별되지 않는다. 세상과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어딘가에 녹아든 상태에서 갑자기 깨어나 일상적 의식 속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왜냐 하면 주위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걷는 황홀감 속에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침묵을 지키며 무거운 짐을 지고 시선을 고정시킨 채, 손으로 암벽을 건드리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장애물을 통과한다.
그런 과정에서 자신의 무게에서 해방되어 두 세상 사이를 걸어다니는 경지를 경험하게 된다. 그 시절에는 이 세상 전체가 다 나의 집이었다. 때로는 동굴이나 숲 속에 발길을 멈추고 유일한 이동 수단인 두 발에만 의지하여 돌아다녔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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