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 사회나 일본, 미국 등 선진 사회에 만연해 있는 두려움은 분노, 비난, 시기와 곧잘 뒤섞인다. 두려움은 이성적 사고를 막아서고, 희망을 쪼그려뜨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건설적인 협력을 방해한다.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낀다. 자신의 미래를, 사랑하는 이들의 미래를 두려워한다. 자식 세대가 자신보다 더 성공하고 부유해질 것이라는 희망과 꿈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이런 두려움은 하위 중산층의 수입 부진, 건강 악화와 수명 단축, 취업 시 대학 학위가 더 중요해진 시점에서의 고등 교육비 증가와 같은 실질적인 문제들로 인한 것이며, 늘 해결하기 어렵고,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어렵고 긴 연구와 협력이 필요하다.
결국 이와 같은 공포와 무력감은 이민자, 소수 인종, 여성과 같은 외부 집단을 향한 비난, 혹은 타자화(他者化)로 쉽게 전환도며, 특정 대상을 말 그대로 다른 존재로 보이게 만듦으로써 분리된 존재로 부각시키는 말과 행동, 사상, 결정 등으로 나타난다.
이는 사회학의 용어에서 출발하였지만, 철학, 역사, 정치학 등에서도 사용 가능한데, 타자화가 문제시되는 이유는 대상의 이질적인 면을 부각시켜 공동체에서 소외시킴으로써 주체가 아닌 객체로서, 스스로의 목소리를 잃게 만드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질병을 퍼뜨려 우리의 행복한 삶을 깨뜨리며, 부유한 엘리트들이 나라를 독점했다는 식의 의식으로 나타난다. 우리의 소위 진보와 보수라 칭하면서 정치적 올바름과 균형적 시각에서 반하는 모습들이기도 하다.
세계화와 자동화, 정보화와 디지털화가 노동자 계급에 끼친 심각한 문제들은 쉽게 해결하기 힘들어 보인다. 사람들은 삶의 기준이 낮아지고 있다고 느낄 때 그 어려움과 불확실성을 대면하기보다 절대자인 악당에 매달리거나 환상을 품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벽을 세워 그들을 막을 수 있다면, 혹은 그들을 굴종하는 자리에 묶어놓을 수 있다면, 긍지를 되찿고 남성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 이렇게 두려움은 유용한 분석 대신 공격적인 타자화 전략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사회적 경제적 평등을 주장하고 여성과 소수자들을 위한 권리를 보호한다는 진보 운동권 내에서도 두려움은 만연한 듯하다. 선거 결과에 좌절한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곧 종말할 것처럼 반응하고 스스로 그런 분위기를 만들고, 그 안으로 숨어들고 있다.
많은 지인과 동료들이 마음 속에 뭔가의 사회적 적의를 하나 이상씩은 간직하고 있으며,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새 정부가 인간차별, 여성 혐오, 동성애 등 소수자 혐오에 전례 없이 동조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특히 언론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 결사의 자유와 같은 민주주의의 상징들이 박탈당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한다. 더 어린 학생들은 사랑하는 대한민국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걱정하기도 한다.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진지하게 분석하는 태도가 더욱더 중요해지고 있다.
오늘도 흥겹고 건강하고 행복한 한 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