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이 복잡 다단한 한 정보 기술 사회에서는 특정 주제에 관한 정보를 많이 획득한 사람들은 그것을 다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고 사용법을 제대로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흔히 다 기억하고 다 안다고 생각하며, 그만큼 자신감이 늘어간다.
흔히 우리는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주저한다. 이런 미지에 대한 과잉된 자신감은 이른 바 사후에 세상에 대한 과잉 확신편향, 즉 우리 그동안 뭔가를 쭉 잘 알고 있었다는 착각을 낳기도 한다.
과거 정치인들이 자기 지식의 한계를 알 필요성에 관해 지혜로운 말을 하는 것을 좋아했다면, 오늘날의 엘리트 권력자들은 무지의 공유를 통해 보통 사람들과 연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편이다.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처럼.
오늘날 바뀐 것이 있다면, 사람들이 진신에 눈감데서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진실에 대한 무지에 의해 하나가 되고 있다는 말이다. 무지는 지식의 단순한 부재나 부족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해당 집단이나 사회 전체가 지식을 생각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무지의 성격은 또 한 사회가 지식 부족의 결과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그것이 수치나 권력 상실의 이유가 되는가, 아니면 한 개인이 알고 있는 사실을 규정하고 나아가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규정하는 데 도움을 주는가?
만약 어떤 지식이든 지식이라는 생각은 대상에 관해 확신을 주고 세상에서 우리의 자리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주는 효과가 있다면, 반대로 무지는 세상에 관한 불확실성과 불편감을 암시하고 있을 수 있다.
만일 지식이 교육, 경험, 타고난 재주와 관계없이 모두가 차별 없이 이용 가능한 것이라 믿게 된다면, 무지의 상태는 더욱더 개인적으로 굴욕감의 원인이 된다. "터널 시야"나 "인터넷 거품"과 관련한 무지가 늘어나는 현상의 부정적 진술을 자주 듣는다.
반면에 새로운 지식을 발견할 때 무지가 하는 생산적 역할에 대해서는 그만큼 자주 듣지 못한다. 과학자들이라 하더라도 무지는 지식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공백과 관련이 있으며, 과학은 이 공백을 인정하도록 밀어부치는 엔진이다.
그와 동시에 과학자로 하여금 자기비판적 태도를 유지하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의사가 지식이 부족하면 겸손한 행동이 환자의 목숨을 구할 수도 있다. 전문가가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것은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식 기반 의학'이나 '지식 기반 경제'라는 말은 의학이나 경제가 새로운 기술적 발전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인상을 주지만, 차라리 "무지 의학" 또는 "무지 경제"라고 부르는 편이 더 맞다.
의학이나 경제가 지식 공백의 창출과 전략적 활용에 심하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지식의 가장 중요한 기제는 지적 능력에 대한 의존성이 더 높아진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로 지적 능력을 억제하겠다는 결의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한 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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