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 성 일 : 2022.08.05 + 작 성 자 : 이동윤
+ 제     목 :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철학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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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는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있는 것과 있지 않은 것의 차이를 안다. '존재한다'는 좀 딱딱한 표현도 마찬가지다. 아기도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을 구분할 수 있다. 그래서 엄마가 있으면 웃고, 엄마가 없으면 운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존재 그 자체의 불변하고 정적인 우리에 대해 있는 대로의 사물과 그 자체로 있는 대로의 존재 사이의 뜻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존재의 의미에 대해서 물음을 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일상의 삶을 끊임없이 비틀어서 새로운 삶을 만든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일상의 관계들이 은어로 다가온다. 모든 것을 말로 접하는 우리에게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삶을 비비 꼬며 살가가고 있는가?

대체로 일상을 변형시키는 것은 예술가의 몫이지 우리의 몫은 아니다. 때로 예술가들은 자신이 원하는 의미를 찾지 못하면 삶을 비튼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작품에서는 일상적 삶과는 다른 어떤 울림이 있게 된다.

일상에서 보는 삶의 철학도 예술품과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우리에게 삶의 고민은 그만큼 익숙하고 명료하며 질서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낯설고 모호하며 당혹감을 안겨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 일상의 삶의 가치와 의미들은 명료한 체계를 우선하는 과학보다는, 모호하지만 울림을 주는 예술에 보다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주관주의와 형이상학은 이 다루기 힘든 삶의 문제의 양면이다. 우리가 자연적인 삶의 감각에 접근할 수 있는 일이다.

삶은 우리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다. 우리는 그 자체로 있는 대로의 자연에는 접근할 수 없다. 우리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 뿐, 삶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지는 않는다. 삶의 세계는 단지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적 탐구만으로 삶의 세계는 온전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우리 삶의 세상은 숨기를 좋아한다. 더욱이 과학적 탐구 방식으로는 결코 해명되지 않는 존재 양식을 가진 존재들이 바로 우리 인간이다.

일상에서 끊임 없이 변화하고 생성하는 삶의 변화와 생성을 뛰어넘는 존재의 문제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하는 인식의 문제와 관련된 격돌이 바로 철학이며, 삶의 근원을 존재에 대한 물음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우리의 삶으로부터 시작하는 물음은 항상 형이상학적 물음이 되고 만다. 이런 형이상학적 물음은 가장 궁극적이고 포괄적이다. 삶은 오로지 살아감으로써만 존재하며, 그런 점에서 삶은 결코 형이상학적 물음과의 대면을 피할 수 없다.

오늘도 흥겹고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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