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 성 일 : 2022.07.27 + 작 성 자 : 이동윤
+ 제     목 : 지금 여기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이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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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실제로 존재할 수 있어야 세상도 실제로 나타날 것이고, 내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마찬가지로 세상도 실체가 아닌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 당연하다. 내가 육신을 나로 여기면 물질적인 나를 보게 될 것이다.

꿈을 꿀 때처럼 미묘한 몸이나 마음을 나로 여기면, 그 또한 마찬가지로 미묘한 대상을 보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잠에 깊이 빠진 사람이 육체와 자기의 동일시마저 없어졌을 때는 아무 것도 보지 않게 된다.

나에게 보이는 대상은 그것을 보는 나의 상태와 연관되어 있다.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어떤 사람의 환영을 볼 때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되는 것이 당연하다. 오랫동안 어떤 상태의 존재를 마음에 두고 살아간다면 그 모습이 꿈이나 일상에 나타나게 된다.

누군가의 환영을 보거나 느낌을 받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 상태에 때라 일어난다. 그것은 개인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으며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그런 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화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깨달음은 눈앞이나 머리 속에 떠오르는 어떤 존재감이 아니라 찰라적 영원을 체험하는 것뿐이다.낭떠러지에서 떨어질 때의 절박감 속에 느끼는 평화로움 같은 것이다. 그런 느낌을 평소에 마음 속에 간직하는 것이다.

신은 말 속이나 형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영원한 존재를 깨닫고 체험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특정한 모습으로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깨달음이 영원하지 않다면, 그냥 스쳐 지나가는 환영이자 미혹일 뿐으로 아무 쓸모가 없다.

환영이든 무엇이든 보는 사람이 있어야 하며, 그 보는 사람만이 실체이며 영원하다고 할 수 있다. 강물 위에 수많은 달이 떠 있는 것을 본다고 해서 그것이 체험이 될 수 없다. 깨달음의 환영을 보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수준의 눈과 마음이 필요하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아는 것은 간접적인 체험이지만, 보는 사람이이 스스로 그것이 되는 것이야말로 직접적인 체험이 되는 것이다. 오로는 보는 사람만이 그 자신이 되는 것이 직접적인 체험이다. 달리기처럼.

극락이나 천국이 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도 지금 여기처럼 스승과 제자가 있고, 급이 높은 사람이 있고 낮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아랫 지위의 존재들은 묻고 윗 수준의 존재들은 대답할 것이다. 이런 일이 계속 이어지면서 묻는 자의 마음은 계속 방황한다.

정작 평화는 묻고 답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탐구를 통한 깨달음의 획득밖에 없다. 내가 누구인지 나를 깨달으면 모든 극락 세상이 내 안에 있을 뿐임도 깨닫게 된다. 그러면 방황도 깨달음의 질문도 있을 수 없다.

오늘도 흥겹고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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