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 성 일 : 2022.11.08 + 작 성 자 : 이동윤
+ 제     목 : 삶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죽음을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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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두려워한다며삶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말이며, 삶을 사랑한다면 죽음까지도 한없이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다. 장자에 나오는 세 명의 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하루는 세 사람이 삶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한 사람이 "더불어 살면서도 그것을 모를 수 있을까? 더불어 일하면서도 아무 열매도 맺지 않을 수 있을까? 존재하는 것을 잊고, 공간을, 세상을 끝없이 날아다닐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세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고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은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전보다 더 좋은 벗이 되었다. 그러다 한 사람이 죽었다. 공자는 다른 두 벗이 그의 장례를 치르는데 곡하는 것을 돕기 위해 제자를 보냈다.

그 제자는 친구 하나가 현악기를 켜는 동안 다른 친구 하나는 노래를 짓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들은 노래 했다. "친구여, 그대는 어디로 갔는가? 아아 친구여, 그대는 진정 어디고 갔는가? 그대가 진정으로 있던 곳으로 그대는 갔고,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 남았다.

아아, 빌어먹을, 우린 여기에 남았다." 그 때 공자의 제자가 그들 가운데 끼어들며 외쳤다. "장례 예법 어느 곳에 이런 것이 적혀 있는가? 고인이 있는 자리에서 어찌 이런 불경스러운 노래를 부르는가?" 그 두 친구는 서로를 바라보고 웃었다.

"가엾은 친구, 이 사람은 새로운 예법을 모르는군."이라며. 그렇다. 삶에 대해 이해해야 할 첫 번째는 삶은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삶은 절대적인 빛 속에 있지만, 그곳에 대한 설명은 없다. 삶의 그냥 하나의 신비로 존재하고 있다는 말이다.

삶에 대한 설명을 시도하면 할수록 삶을 놓쳐버린다. 삶은 설명될 수가 없다. 설명을 통해 우리는 더더욱 장님이 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철학은 삶의 적이 될 수도 있다. 우리에게 가장 해로운 일은 설명에 사로잡혀 고정되는 일이다.

설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삶은 떠나고, 이미 죽어 있는 것이다. 하나의 역설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죽음은 설명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삶을 거듭 거듭 말하지만 설명될 수 없다. 죽음은 끝이 난, 완성된 무엇이고, 삶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언제나 우리 주위에 도달해 있고, 어떤 것이 도달되어 마무리되면 우리는 그것을 설명할 수 있고, 그것을 한정시킬 수 있다. 어떤 것이 아직 진행 중일 때는 여행해야 할 미지의 것이 아직 남아 있다는 의미다.

과거는 알 수 있지만, 미래는 알 수 없듯이, 과거는 이론으로 정리해 놓을 수 있지만, 미래를 어떻게 이론화할 수 있을 것인가? 미래는 언제나 하나의 열려 있음이며, 무한한 열림이다. 그러므로 설명을 시도하는 순간 그 설명은 언제나 죽어 있는 것을 가리킬 뿐이다.

오늘도 흥겹고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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