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생 여정인 인생은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길을 보면 없어져 보이는 것처럼 수 많은 언어를 사용해도 다 설명할 수는 없을 뿐만 아니라 이해할 수도 없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실제로 있는 것도 아닌 것, 즉 공(空)이라 할 수 있다.
"인생, 그것 별 거 아니야!"라는 한 마디로 끝낼 수 있지만, 빙그레 웃기만 할 뿐 한 마디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마치 부처님의 이심전심의 미소처럼. 대표적인 것이 반야심경은 겨우 262자로 이루어진 경이지만, 그 속에 '비었다'는 공(空)이 여러 번 나온다.
뿐만 아니라 중간 부분에는 '없다'는 '무(無)'라는 말이 여러 번 등장한다. 더욱이 경의 중간에 나오는 말에는 모두가 '무(無)'라는 부정사가 앞에 붙어 있다. 즉'..도 없고, ..도 없다'식으로 나열되어 있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무'는 오로지 부정을 위해서만 얼굴을 내밀고 있는 느낌이 들게 만든다. 한 마디가 아니지만. 끝없이 한 마디에 가까운 경전이며, '공(空)'은 수만 언어를 써도 설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해할 수도 없다.
그래서 '단 262자로도 수만 언어를 대변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이 충분한데, 무슨 불평이 그리 많으냐'는 식으로 다소 도발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경전이라 할 수 있지만, 그런 박력이 멋지다고 생각된다.
짧은 글 속에 '공'과 '무'가 이어서 나오고 있기 때문에 읽지 말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무리한 요구일 수 있다. 짧기 때문에 쉽게 읽을 수도 있지만, 이것을 읽고 무언가 느낌을 얻었다면 그쪽이 더 이상할 수 있을 정도다.
이런 반야심경이 처음부터 이해되는 것을 거절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듯이 우리 인생 또한 그렇게 우리에게 단순하면서도 복잡하게 간결하면서도 끝없이 이어지고 다가오고 있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알아보려고 인생에 대한 해설서를 사서 본다.
하지만 모든 책들은 '나뭇잎은 푸르고, 꽃은 붉으니 자연 그대로가 좋다'든가, '본래의 자기를 보라'든가. '집착을 버려라'처럼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알쏭달쏭한 말들로 가득할 뿐, 아무리 읽어도 우리 인생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집착을 버리라고 하지만, 어떻게 버리면 좋을지 알 수 없다. 그 점에 대한 언급은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간단히 버릴 수 있는 것이라면, 이 세상의 모든 괴로움은 진작에 없어졌을 것이다. 나는 인생의 철학적 해명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런 책이나 글들은 아주 아주 많이 나와 있다. 우리 스스로 자신을 철학자라 규정하거나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관심은 오직 하나다. 어떻게 하면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것밖에 없다. 그것 외에는 나에게 아무래도 좋다.
인생은 다만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만 모든 것은 이어져 있다는 것만을 나타내는 의미가 아니다. 이 배경에는 늘 우리가 안고 있는 불행의 문제가 있다. 그것을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고(苦)', 즉 '괴로움'의 문제다. 끝없이 달려가야 할 '마라톤'이다.
오늘도 흥겹고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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