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꿈꾸는 시나리오...프롤로그
어지간한 연습으로 마라톤 풀코스를 도전한다는 것은 서툰 목수가 조각배 띄워 태평양을 건너겠다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더구나 한 번도 마라톤을 뛰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준비 없이 도전을 할 경우 가히 상상 할 수 없는 결과를 맞을 수있다. 매년 마라톤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10여명이 넘는 것도 다 철저한 준비 없이 어떻게 가겠지 가다 안 되면 걸으면 되겠지 하는 안일에서 오는 사고들이다. 시속 100km를 달리는 승용차가 약 30분을 쉬지 않고 달려야 도달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거리를 사람이 아무런 보조 장치 없이 달랑 두발로 달린 다는 것, 풀코스....그 길 위에 지금 봉주와는 전혀 다른 봉근이가 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때가 7km지점이었다. 회수차량의 비상 라이트가 더운 등짝을 바짝 비추었다. 아뿔싸!! 더는 느리게 뛸 수 없는 최악의 순간이 오고만 것이다. 회수차량 뒤로 일반 차량들이 지네처럼 바짝 엎드려 따라오고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뛰지 말라는 교통해제의 경고이기도 했다. 실로 교통해제 후 주절주절 인도로 뛴다는 것은 집나온 아이 보다 더한 처량함이요 남 보기 참으로 밉상스러움이다. “어때? 뛸 수 있겠어?” 나는 물었다. 그러자 잔뜩 얼굴을 찡그리며 봉근이는 속마음은 그만 뛰고 싶으나 예비사위라는 정신적 무게에 눌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봉근이의 숨소리는 점점 세차게 거칠어 졌다. 아직 10km도 못 온 지점이었는데도 무슨 풀코스를 한 바퀴 돌고 온 사람처럼 쐐액~쐐액 서울특별시 공기를 혼자 다 빨아들이고 있었다. “심해? 죽겠어? 우리 그럼 기권하자? 자네 얼굴빛이 빛바랜 창호지 같다. 끝 여기서 기권!!!!!!!!” 그리고는 내가 먼저 걸었다. 그때가 정확히 7km지점이었다. 평소 나는 마라톤 초심자들에게 완주하는 법을 배우기보다 기권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은근과 끈기도 상황에 따라 부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 봉근이와의 달리기도 그런 자세에서 끝내고 싶었다.
뒤따라오던 회수차가 타라며 빵빵 소리를 냈다. 나는 차 쪽을 가리키며 탈 것을 권유했다. 그때 봉근이가 말했다. “여기서 차 타면 진짜 안 되는데요?” “왜 안 되는데?” 나는 바로 되물었다. “무슨 어쩔 수 없는 부상도 아닌데 10km도 못 가서 차 탔다하면 아버님이 저를 어떻게 보시겠어요?”아니 이 사람아, 사람이 죽는데 그럼 뛰란 말이야? 나야 뛰고 싶지만 지금 자네 상태를 보면 절대 안 돼. 다음 기회에 뛰어. 오늘은 여기서 끝이야.” 나는 단호하게 가로막았다. 초심자들이란 하나같이 의욕만 앞서 강하게 제동 걸지 않으면 비실비실 뛰려고 덤비기에 그 무모함을 초장에 꺾어야만 했다.
4.꿈꾸는 시나리오...에필로그
나는 봉근이와 한참을 실랑이 했다. 이미 회수차는 우리가 탈 뜻이 없음을 알고 200여 미터 지나갔다. 그때였다. 갑자기 봉근이가 다시 뛰기 시작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나는 뒤에서 슬슬 뒤따라갔다. 순간 뛰는 모습을 봐서는 충분히 하프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약 1km쯤 달렸다. 다시 회수차도 앞질렀다. 이제는 좀 뛰려나 보다 하며 속으로 은근히 기대하며 봉근이 얼굴을 살피는 순간, 봉근이가 갑자기 다리를 절뚝이며 길옆으로 갔다. 그리고는 왼쪽 무릎을 주물렀다. “왜 쥐나나?” 나는 물었다. 그러자 왼 무릎 바깥쪽을 가리키며 심하게 아프다는 것이었다. 내가 살짝 만지는데도 성난 강아지 소리 지르듯 큰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면서 절뚝절뚝 인도로 올라가 걷고 있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보기엔 그 정도 속도로 뛰어가지고는 절대 부상 올 리가 만무한데 무슨 꿍꿍 속이 있어 부상이라고 저러는가 싶어 다시 걸어 보라고 말했다. 그러자 봉근이는 모든 시나리오가 마무리 된 듯 절뚝거리며 사진 한 장 찍어 달라고 했다.
아뿔싸!!!!!!!!
역시 Y대 출신은 머리가 비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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