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황당 봉근이의 機智
사람은 모름지기 機智가 뛰어나야 출세도 하는 것일까. 봉근이의 빠른 두뇌회전에 나는 깜짝 놀라 어리둥절하면서도 그가 원하는 대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다리를 구부리고 등을 비틀고 곱상한 얼굴을 있는 대로 찡그리며 ‘총 맞은 사람’(백지영 노래에서 차용)처럼 온갖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기만의 연출을 멋들어지게 해냈다. 그때마다 나는 연신 디카 셔터를 눌렀다. 황당봉근이의 고난도 알리바이가 깔끔하고 저장되도록 꾹꾹 눌렀다. 어쩌겠는가. 그렇게라도 해서 푸르른 4월의 허니문 베이비 탄생에 아무 지장 없게 도와야 하며 또 페메 품삯으로 이동윤 예비 장인어르신께 거한 저녁 한턱 으더 먹으려면 어쩔 수 없이 감독 장봉근, 주연 장봉근, 보조 카메라 김재남 제목, <황당봉근 시나리오>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를 찍었을까. 본인도 미안한 듯 그만 가자며 길을 재촉했다. 잠깐이었지만 족히 20여장은 찍었으리라. “야, 이 사람아! 왜 하필 이 장면 사진을 찍어 달라는 거야?” 나는 봉근이의 하얀 속셈을 전혀 모른 척 물었다. 그러자 봉근이는 디카에 저장 된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며 “죄송한데요. 이 사진들 아버님 사이트에 좀 올려 주세요.” 하고는 회수차 쪽으로 바람보다 더 가볍게 뛰어갔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人倫之大事를 눈앞에 두고 있는 젊은이의 간절함을 소리 없는 희망을 그 속에 담겨있는 봉근이의 푸른 추억을....... 내 어찌 거절할 텐가. (뽀샵 처리하여 멋있게 올려드리겠나이다.)
6. 초황당, 완주메달을 깨물다.
회수차를 타고 잠실운동장 뒷문에 11시쯤 내렸다. 이제 막 선두그룹이 하나 둘 들어 올 시간이라 운동장은 다소 조용했다. 나와 봉근이는 보조경기장에 마련된 물품보관소에 짐을 찾고 칩을 반납하고 그리고 완주 메달을 건네주는 자원봉사자의 따뜻한 “완주 축하드려요. 수고 하셨어요.”한마디를 죄송하게 들으며 운동장을 빠져 나오고 있었다. 아침 광화문은 추웠으나 잠실 운동장은 봄 햇살에 따뜻했다. 완주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하얀 이빨들을 출렁이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나도 한때는 저런 추억이 있었지, 밤잠 설치며 새벽 가방을 챙기고 겨드랑이며 사타구니에 바셀린을 바르고 일류선수 같은 옷차림으로 긴장의 출발선을 바라보며 불같은 마의 3시간45분을 끊던 시절이 있었지...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터덜터덜 걷고 있는데 갑자기 봉근이는 “저기요. 사진 하나만 더 찍어 주세요?” 하며 완주 메달을 깨무는 시늉을 했다. 나는 그 표정이 하도 우스워 머뭇거리자 자기도 창피한지 빨리 찍어 달라며 재촉을 했다. 그래 저쪽에 서봐. 이런 촌스런 장면은 마라톤 10년이 넘는 내 이력에도 없는 초특급 황당이지만 그대가 원한다면 찍어주지 하며 몇 장 눌렀다. 참 우스웠다. 자기가 무슨 올림픽 금메달을 딴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완주를 한 것도 아닌데... 살인미소 이용대도 아닌....고작 10km 뛰고 얻은 불량 완주 메달을 깨무는 저 화려한 능청, 어쩌자고 지금 나는 또 셔터를 눌러 대는가.
대회가 끝난 지 열흘이 지났다. 풋과즙 한 입 고이는 상큼한 추억이었다. 작년에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여 지금은 모 회계법인에 다니는 신참내기 <황당 장봉근 선생>과 나와는 이렇게나 짓궂은 인연으로 만남을 이어 갈 것이다. 또한 바쁜 3월 결산이 끝나면 늦게나마 우리 뒤풀이를 해야지? 또한 다음 마라톤 도전 때는 절대 기권 없으니 그리 알고 사전 연습 탄탄히 하길 바라네. 끝으로 4월25일 결혼을 축하하며 귀머거리 남편과 장님의 아내는 언제나 행복하다는 속담처럼 들으매 너그럽고 마주 봄에 항상 웃는 부부가 되길 바라네.
유진, 황당봉근이랑 한번도 싸우지 말고 잘 살아요. 싸우면 두 사람 다 회초리 열대야.
(장봉근 3편을 끝 맺으며 20%만의 사실을 픽션화 했음을 밝혀둡니다. 그러므로 장봉근 선생은 전혀 황당 봉근이가 아님을 힘주어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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