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서 자주 듣는 말 중에 "어떻게 지내고 있어?"라는 안부 인사에 "응, 점점 나아지고 있어!"라고 답하는 말이 있다. 나는 이런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환자들에게 기분이 어떻냐는 물음에 매번 "나아졌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좋다거나 괜찮다거나 행복하다거나 언짢아다거나 화났다거나 슬프다고 말하지 않고 매번 "나아졌어요."라고 말한다. 이런 대답은 나의 우려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 담겨 있다. 상태나 상황, 또는 사랑이 걱정이 되고, 걱정이 과도한 개입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다.
인간관계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최악의 예를 하나 들어보자. 화창한 토요일 겨울이라 춥지만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만은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라디에이터에서는 온기가 전해지고 있다.
몸은 뭔가 서늘함을 느끼고 근육들이 굳어져 팔다리가 쑤시고 손발이 저린다. 책상 앞에 붙잡혀 있는 내 인생을 바라보고 있으면 기력이 더 떨어지고 기분도 오락가락하게 된다. 컨디션이 최고로 나빠지며 자기 연민에 빠져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기도 힘들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느낌이 확 다가온다. 뭐라도 해야 한다. 좋은 부모라면 이럴 때는 어떻게 할까? 필시 아이를 근처 공원이나 도서관이나 수영장 같은 곳에 데려 갈 것이다.
나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래 밖에 나가보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갈 옷차림을 준비한다. 보온과 방한 복들을 꼼꼼하게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간다. 문을 열고 밖의 찬 바람이 확 얼굴에 전해진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핵심 자질들을 가지고 있으며, 상대로부터 그런 자질을 칭찬받고 그런 칭찬을 통해 긍지를 느끼게 된다. 그런데 상대가 자신의 자질들을 알아봐주지 못할 때 더 짜증이 나고 화를 내게 된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의 내면적 상황에 따라 낙관주의가 악화와 완화를 거듭하게 된다. 멀쩡한 상태에서도 취한 상태가 될 수 있고, 그러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릴 서로에게 해대기도 한다.
술기운에 세상이 좋게 보일 때도 있지만, 지쳐 탈진한 것 같을 때도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내게 계속 알려주던 나의 의식적인 부분이 어찌된 일인지 개울에 빠져 시커먼 바닥에서 세상을 올려다보는 것 같다.
어떤 변명으로도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에게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인간관계에서 서로에게 내뱉는 추악하고 잔혹한 말에 담긴 해악은 독성 물질보다 더 지독하다.
고개를 바닥에 처박고 뒤집어져 있는 인형 같은 꼴이 되기 십상이다. 인형만 그런 것이 아니다. 상대도 나도 세상도 전부 다 뒤집어질 수 있다. 정상적이지 않는 상황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생김새는 달라도 하나 같이 행동은 똑같다.
인간관계를 제대로 유지 관리하지 못하면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 실패한 인생으로 끝날 것이다. 그렇지만 성격이나 환경을 실패한 내 인생의 종범으로 끌어들일 수는 없는 일이다. 적어도 우리는 앞날을 내다볼 수는 있다. 외부에 내 삶을 맡겨서 안 되는 이유다.
오늘도 흥겹고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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