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울트라마라톤 매니아 두 분과 만났다. 나는 1998년도에 100km 대회 두 번 나가고 나서 울트라는 욕심 내지 않기로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쉬는 휴일을 달리기로 다 허비하기에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 뒤로는 죽지 않고 그냥 42.195km의 마라톤만 달리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다 100회를 지나고 150여회를 지나면서 그저 숫자 뿐인 대회 완주보다는 혼자 즐기는 매일 달리기에 더 관심을 가지고 이어가고 있다. 내 목표는 오로지 야외 달리기 그 자체다.
계절이 바뀌고 나이가 들어도 하루 2,30km는 큰 어려움 없이 달릴 수 있는 몸을 유지하고 있다. 대회 참가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가능하고, 시간 단축도 가능하리라 생각하고, 훈련도 할 수 있다.
뭐 요즘도 3시간 이내 마라톤 완주는 어렵겠지만, 4시간 이내는 불가능하지 않다는 마음이다. 본격적인 장거리 달리기가 시작된 1997년 이후 달리기 때문에 부상을 입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정말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계속한 1시간 이내의 아침 조깅 습관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외과 수련의 때는 시간이 없을 때 계단이나 가까운 동산 달리기를 짧고 강하게 하면서 달리지 못하는 허전함을 달래기도 했다.
우리의 모든 삶이 그렇듯이 달리기도 출발선에 서기 전에 얼마나 잘 준비되어 있는가에 따라 완주와 부상이 갈리게 된다.좋게 말해서 준비가 조금 덜 된 상태에서 출발선에 서 있다면 좋은 결과가 기다려주지 않을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어쩌다 공식적이고 이성적인 마음에 몰래 비집고 들어온 작지만 강한 영향력의 비이성적 자만심이 자신을 출발선에 서도록 충동질할 수도 있다. 그러면 누구나 참가신청을 하고 출발선에 서게 된다.
이성은 여전히 고개를 젓고 있지만, 내심으로는 '그냥, 혹시 몰라서 가는 거야'라고 이성을 스스로 타이르면서 말이다. 내 이성은 종아리 테이프를 구입하고, 실패할 이유가 백 가지도 넘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혹시 몰라서'라는 어설픈 이유를 주워섬긴다.
우리는 안다. 혹시 몰라서 가기에는 너무 늦었다. 사실 이런 충동적 행동은 자신의 이성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아 자초한 현실적 화의 씨앗이다. 내 상태가 어떨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좋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대충 생각이 든다.
마라톤 대회 출발선을 일단 떠나면 얼마나 오래 달릴 수 있을지, 혹시 다리는 아프지 않을지,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이것은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다. 솔직히 전혀 관련이 없지는 않겠지만, 나의 소중한 시간을 쓸데 없이 낭비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도시 마라톤 대회는 도로의 차량통제가 구간별로 순차적으로 해제된다. 누구나 가능하다면 차량 통행이 재개되기 전에 해당구간을 지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6시간 이후 모든 차량통행이 재개되기 때문이다.
오가는 차량 사이를 비집고 달리거나 인도를 반라의 상태로 번호표를 달고 달리는 것은 좀 창피한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위험한 일이다. 그것마저도 시간이 조금 흐르면 일상 다반사처럼 특별한 것도 없어진다.
달리는 도중의 부상과 수치감, 길고 고통스러운 달리기와 교통사고의 위험, 이 3가지를 더하면 실망과 고통, 혹은 죽음이다. 출발선에서의 그런 불길한 예감은 두려움은 아니지만 불편한 느낌은 당연하다. 그냥 좀 긴장한 탓이므로 꼭 나쁜 것만도 아니다.
오늘도 흥겹고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이동윤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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