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오는 지난 일요일에 동아마라톤에 참가한 주자들이 길게 늘어선 번잡한 주로 가운데를 달리다가 왼쪽 신발끈이 풀어졌다. 할 수 없이 도로 가장자리로 나가기 위해 오른 손을 들고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면서 주로에서 겨우 벗으나 신발끈을 다시 단단하게 맬 수 있었다.
마라톤 주로에서 어깨나 팔꿈치가 부딛치거나 뒷사람이 앞사람의 발뒤꿈치를 차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일어나지만, 사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냥 무표정하게 앞만 보며 달린다. 목례를 하거나 살짝 미안함의 웃음을 짓거나 손을 들거나 "아, 죄송합니다!"하고 사과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흔한 경험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일을 당하는 나는 짜증이 난다. 일순간 나의 달리기 리듬이 깨어지고 몰입해 있던 달리기의 즐거움에서 정신이 번쩍 들면서 혼잡한 속세로 되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의 권리만 생각할 뿐 상대에 대한 약간의 배려에도 인색한 경우는 살아가면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우리 주위의 광경들이다.
길가다 어깨를 부딛치거나 지하철에서 빨리 내리겠다고 앞사람을 밀쳐내거나 식당에서 아이들이 막무가내로 떠들며 행동하는데도 가만히 봐주는 부모들 등등...이번 일본의 지진과 쓰나미 사태에서 일본인들이 보여준 배려심에 대해 놀라게 되는 이유다.
왜 우리는 미안하다거나 죄송하다라는 말을 하기 어려워할까? 예전 군사정부 시절에 흔한 일이 생각난다. 검문소에 버스가 일시 정차하면 헌병 완장을 찬 군인과 경찰이 올라와 거만한 거수경례를 붙이면서 하는 말이 거두절미하고 "잠깐, 검문이 있겠습니다!" 였다. 그러면 승객들은 모두 가만히 창밖의 먼산만 바라보고 앉아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복잡한 지하철이나 백화점 등에서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 하는 말인 "잠깐만요!"의 어원도 검문소의 강요성 안내말에서 유래했을 것같다.
영어권에서는 "익스큐즈 미!", 일본에서는 "스미마셍!"하며 상대를 불편하게 해서 죄송하지만 협조를 부탁한다는 표현을 쓰지만, 우리는 내가 급해서 그러니 당신의 불편과 권리를 "잠깐만 " 참아달라는 요구를 정말 전혀 미안한 마음도 없이 당당하게 내뱉듯 말한다.
시어머니 욕하면서 배운다는 며느리처럼, 우리도 개인의 자유와 권리보다는 공동체적 가치를 중시했던 국가주도의 경제개발 시기를 거치면서 어느 듯 나도 모르게 상대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나의 권리만 앞세우는 자기 중심적 삶의 태도에 깊게 물들어 있는 것이다.
또한 먹고 살기 힘든 상황에서 국가 개발에 따른 경제적 활력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내가 먼저 살고 볼이다'라는 이기적 강박관념에 빠져 뒤로 처지는 이웃은 '운이 없어서...'라며 애써 시선을 거두고 군사작전하듯 자신의 앞만 바라보고 살아온 결과가 아닐까 싶다.
대개 성공한 사람들은 상당히 거만하고, 상대를 배려하기보다 자신의 주장만 강하게 하여 만남을 불편하게 하는 부담스러운 존재일 것이라 상상하지만, 직접 만나면 이들 대부분은 더없이 부드럽고, 온화하며, 겸손하고, 상대를 최대한 편하게 해주려 노력하는 것을 보고 놀라게 된다.
성공한 사람은 누구나 자질구레한 일보다는 통큰 일을 좋아하고 그렇게 행동할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지만, 사실은 성공한 사람일수록 생각은 대범하지만 일처리는 세심하게 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다.
내가 가진 꿈을 실현시켜주는 것은 그 꿈의 내용이나 크기가 아니라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나자신의 세심한 전략에 달려있고, 배려가 전략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오늘도 즐겁고 건강한 하루 만드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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