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원장님,
세상인심 참 사납습디다.
처마 밑 고드름에서 떨어지는
물보다 더 차갑습디다.
그래도 저는 혹시나 하고 머뭇거렸지요.
비록 무임금이지만 '이동윤외과 부원장급’이란
푸른 완장이 우아하게 붙어 있어
설마 그것 몇 점 으더 먹을 체면은 있겠다 싶어
한참이나 서성거렸지요.
환자들은 물밀 듯 밀려와서는 병원이 왁자했지만
그래도 저는 굳건하게 한 점 먹어야겠다는 일념으로
악착같이 버티어 병원 크롯시간까지 버티었지요.
눈치 피해 그렇게 버티는 것 그리 쉬운 일은 아닙디다요.
평소 얼굴 두껍지 못한 저로써는 여간 고역이 아닙디다요.
그렇게나 불상한 저에게 결국 쓴약 같은 아픈 멍을
던져 주시는 원장님,
강감찬 장군 만큼 용감하십디다요.
존경하는 원장님,
뜨건 불판에서 지글거리며 노릿하게 익어가는
삼겹살이 맛은 있던가요.
육즙이 불판에서 파닥파닥 타는 소리에 맞춰
소주는 또 몇 잔 넘김에 황홀한 취기는
황진이의 버선발처럼 오던가요.
제가 가서 먹으면 뭐 얼마나 먹는 다고
10만 나올 것 100만 나올리는 없을 텐데
그렇게나 야박하고 무정하시게
엄동 삭풍 여린 살갗 싹 베어 지나가듯
“진사. 오늘 우리 병원 삼겹살 회식 있으니 담에 봅시다.”
하시며 저를 두고 그리 휑하니 가셔야했나요.
옛말에 잔 음식에 정 든다고
그깟 삼겹살 몇 점 나눠 먹는다고 병원 재정이
우째 될 리는 없을 테고 또한 평소 제가
부원장급 완장을 예비군 훈련장 조교 완장처럼
함부로 발길질 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깟 삼겹살 몇 점이 그리도 아까웠나요.
이제는 대림상가를 쳐다도 안 보겠습니다.
저의 잠원동 지도에서 대림상가만 지워버리겠습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했지요.
저는 그 여인네의 恨, 한 5만 배쯤 품겠습니다.
타조알에서 용이 튀어 나올 때까지 품어 보겠습니다.
그리고 선희씨,
사람 그러는 게 아닙니다.
저와의 인연 수년이 지나 이젠
다정한 오누이쯤으로 알고 있었는데
어찌 그리 몰인정 하셨는지요.
원장님이 저를 아니 데리고 가시려 하더라도
최소한 선희씨 만큼은 그러지 말았어야했지요.
새로 오신 신입 간호사님이야 내가 누구인지 몰라
아무 말 못하셨겠지만 선희씨는 그게 아니잖아요.
선희씨 부군도 나중에 오시어 함께 가는 그 자리
저도 좀 끼면 그렇게나 안 될 자리였나요.
언제부터 우리 잠원동 인심이 그리 서러워 졌나요.
옛 뽕잎으로 누에치던 시절엔 뽕떡 만들어 서로서로
나눠 먹고 돈도 땅도 막 주고 그랬는데
대림상가에 어떤 병원이 생기고 부터는
잠원인심이 주사바늘처럼 뾰족하게 날카로워
점점 살기가 고약한 마을로 변해 버렸습니다.
참 안타가운 일이지요.
그래요. 어쨌거나 다 끝 난 일...
선희씨 저는 오늘부터 ‘이동윤외과 부원장급’ 완장을 반납하고
1층에 ‘사또치킨 부사장급’으로 영전할까 합니다.
그리들 아시고 잘들 사세요.
아, 오늘은 괜히 배가 아프다.
이런 날은 내 자궁에 몹쓸 물이 찼는지 모르는 일
어디 산부인과나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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