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외부에 있는 세상의 물질 현상들은 우리 자신의 반응에 따라 현실적 존재성이 변화한다. 바깥 세상과 내적 자아는 둥근 원처럼 둘이 하나처럼 원을 이루고 있다.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되어 상대를 비추고 있는 것이다.
세상과 자아는 둘다 허상이다. 다른 말로 공하다. 각자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머, 어디쯤에서 세상이 끝나고 나의 자아가 시작되는지 경게선을 긋기는 아주 어려운 일이다. 객관적으로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면 바보 같은 생각일지라도 자아에 변화를 일으키면 현실이 된다.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처럼, 그것이 아무리 어리석은 생각이라도 내 마음이 움직인다면 현실로서 실재하는 현상으로 받아 들여지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제 눈에 안경을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살아가는 길 말고는 다른 삶의 방식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자아, 즉 마음에 걱정이 일어나면, 걱정을 일으키는 원인 요인이 내가 아니라 내 밖에 어떤 것이 있다고 여긴다. 그렇게 밖에 생각할 줄을 모른다. 내일 시험을 봐야 해서 걱정으로 잠을 잘 수 없다면, 시험이라는 밖에 있는 현실이 걱정의 원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시험 전날 시험에 대한 걱정으로 잠을 이룰 수 없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잘 자는 사람들도 많다. 이처럼 잠을 못 자는 것이 오직 시험만이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실제로 우리를 잠 못들게 하는 것은 시험이라는 정보에 반응하여 겁을 내고 있는, 즉 조건 지어진 우리의 신체이다. 몸이 각성되어 있기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는 것이다. 의식적으로는 자려고 하지만, 몸이 시험이라는 정보에 반응해 자동적으로 겁을 먹고 있는 것이다.
자녀들은 부모들이 자꾸 듣기 싫은 잔소리를 하는 것에 화가 나면 화의 원인은 누구에게 있을까? 우리는 거의 대부분 잔소리하는 부모에게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리 감정을 일으키는 원인이 바깥 세상에 있다고 느끼고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과정이 머리로 생각하거나 판단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거의 자동적으로 몸이 그렇게 판단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원인을 만들었다고 보이는 사람이나 일에 대해 화를 내는 것이다.
반대로 기쁨의 원인 또한 바깥세상에 있다고 믿고 있다. 기쁨을 느낄 때 나의 존재감이 커지는 것 같은 행복감을 맛보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행복해지기 위해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원인을 바깥에서 많이 만들어 내려 노력하게 된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감정을 만드는 것이 외부에 있는 것이나 일어난 일이 아니라 외부에서 온 정보에 반응하는 우리 자신의 자아, 즉 정신과 몸의 복합체이다. 이것을 알아차리게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지혜의 역할이다.
오늘도 흥겹고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