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어르신들을 만나면 간혹 죽음이 빨리 오지 않아 괴롭다는 말씀을 하시는 분이 계신다. "빨리 가고 싶은데, 힘들어 죽겠는데, 왜 빨리 데려가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그럴 때마다 웃으며, 아직 죽음이 현실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죽음은 누가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스스로 선택하여 가는 것이고, 아직 선택하기 싫어서 그러니까 즐거운 생각 많이 하시라고 말씀드린다.
우리가 아는 죽음은 피상적인 것이다. 신문의 부고란이나 텔레비젼의 사건사고 소식, 또는 누군가가 전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아는 것이 전부다.
이웃집 누군가가 잠자다가 심장마비가 왔다거나 지난 폭우에 휴가 중에 사고를 당했다거나 마라톤 대회에서 잘 달리다가 돌연사를 했다거나 북한의 기습으로 우리 아들들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째 그런 일이..!"라며 놀라다 걷 잊어버리게 된다.
내 삶도 충분히 힘들고 버거운데 관련없어 보이는 다른 사람의 부담감까지 함께 짊어지고 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결코 그런 상황이나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면서...
범죄드라마나 죽음과 관련된 스릴러물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항상 모든 범죄 이야기의 줄거리는 죽음이 주인공의 통제가능한 범위 안에서 진행되고, 그 이면에는 삶과 죽음이 연장선상에 있다는 영속성에 대한 인정을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평소 죽음에 대해 상당히 왜곡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복잡한 세상과의 일시적 단절을 위해 범죄 이야기들을 오락꺼리나 놀이 쯤으로 생각하면서도 어떤 식으로든 죽음이 나의 삶에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기 싫어한다.
피할 수 없는 것을 피하려고 하는 시도는 무엇이든 내가 통제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고, 그런 가능하지도 않는 통제력을 상실할까 봐 전전긍긍 불안해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내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올 때 오고 갈 때 가듯이 인생도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통제 불가능하다.
만약 내가 죽으면 모든 것이 그대로 유지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나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죽음이 가져가지 못하도록 나 자신이 직접 통제권을 떠맡아야겠다는 생각에 내 몸에 있는 모든 병을 찾아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하면 건강염려증으로 병원을 전전하며 자신은 아픈데 자신의 병을 찾아내지 못하는 의사들을 원망한다.
나의 삶에 대한 완벽한 통제력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며, 자연적인 노화현상도 비켜갈 수 있다는 사실을 남에게 보여주며 내가 마치 불멸의 존재라도 된 것처럼 강력한 힘을 느끼고 싶어한다.
요즘 유행하는 우리 사회의 동안열풍도 일종의 죽음에 대한 공포가 의식의 가장자리에서 우리 스스로 죽음에 대한 통제력을 갖도록 노력하기를 채근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고 죽는 것은 하나의 사실적 과정이며, 언제나 찾아올 수 있다는 불확실한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죽음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불가능한 자기 통제력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삶에서 다른 의미있는 선택을 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죽음이 있음으로 해서 살아있음을 행복하게 느끼게 되고, 있는 그대로의 삶이 존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말이다.
죽음이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나에게 언제든지 닥칠 수 있는 현실적이고 보편적인 사건이다. 항상 나의 정신이 머무르는 몸을 잘 관리하는 것이 심신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길이다.
오늘도 즐겁고 건강한 하루 만드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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