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몸살로 진료실을 방문한 환자가 약만 처방하겠다고 하면, "주사는 놔주지 않나요? 나는 주사가 더 효과가 좋던데...!"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다.
나이드신 분들만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 환자들도 그런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 "주사요? 맞을 동안 아프기는 하지만 효과는 더 좋을 수도 있지요!"라며 주사를 놔주기도 한다.
주사가 알약보다 플라시보(가짜약) 효과가 더 크고, 큰 알약이 작은 알약보다 더 효과적이지만, 아주 작은 알약은 평균적인 크기의 알약보다 더 효과가 있다는 연구가 있다.
요즘은 항우울제와 수면제의 처방이 너무 많을 정도라고 생각된다. 최근의 사회적 압박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프라세보 효과 또한 60~70%로 크다고 알려져 있다.
단순한 플라시보 효과로 넘길 일이 사소한 현상이 아닐 수 있다. 1960년대까지는 미국에서도 암 진단을 환자에게 이야기해주는 경우가 흔하지 않았지만, 1980년대부터는 의사의 97%가 환자에게 직접 진단결과를 이야기하려고 했다는 보고가 있다.
최근에는 우리 나라에도 해당 전문의가 직접 환자에게 직접 병명을 설명해준다. 그만큼 암의 치료기술이 좋아져서 암진단을 받는다고 해도 적절하게 조기에 진단과 치료가 이루어지면 80% 이상의 회복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암과 같은 악성질환에 시달리는 환자들은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로 오해하고, 의사의 진단 자체가 사망의 원인이 되어 실제로 악성질환이 치명적 결과를 가져오기도 전에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의사의 '암'이라는 말을 환자가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심신에 치명적인 강한 충격으로 전달되어 점점 스스로를 궁지로 몰고갈 수도 있다. 그래서 의사와 가족들은 환자에게 진실을 말할 것인가 아니면 건강을 위해 거짓말을 할 것인가 고민하게 된다.
세상살이에서는 진실이 최선의 이익을 이기는 것이라 생각한다. 의사와 병원은 소송에 휘말리는 것을 싫어하고 극도로 꺼린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환자에게 진실을 말해야 한다. 그리고 환자와 가족에게 끔찍한 예후와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가감없이 설명해주어야 한다.
의사의 진단은 고정된 상황에서 그저 질병에 이름표를 붙이는 행위가 아니라 상황을 바꾸는 적극적 요인이다. 진단이 곧 치료의 한 과정이다.
평소 협심증이 있는 어떤 환자가 마라톤 대회에서 돌연사하지만 않았다면, 협심증이 있더라도 평균 수명까지 살았을 수도 있다. 모든 질병을 똑같이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대목이다.
의사가 환자의 질병을 진단하는 시간은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에 비하면 아주 짧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의 모든 면을 잘 알 수 없을 수도 있으며, 의사로서의 자신의 말이 환자에게 어떻게 작용할지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
부부가 행복하게 살아가면서 한 쪽이 바람을 피우는 경우에 만약 상대의 바람끼를 몰랐다면 넘어갈 일이 눈치챘기 때문에 가정이 깨어질 수 있다. 60대 중반의 내 환자 중에 전립선암 지표 항원의 수치가 조금 높아 3개월 마다 암지표 검사를 하는 분이 있는데, 혈액 검사외에 초음파 검사나 비절개 생검에서는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나는 비뇨기과 전문의가 아니지만, 너무 오래 알고 지내는 사이이기 때문에 전립선암 때문에 죽는 사람보다 전립선암이 계기가 되어 죽는 사람이 더 많다는 이야기를 해주면서 그냥 추이를 지켜보면서 차분하게 대응하라고 권유한다.
의사라는 직업 때문에 사소한 농담이 상대에게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실수를 하지 않도록 내가 모르는 질병의 범위가 너무 많이 늘어나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오늘도 즐겁고 건강한 한 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이동윤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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