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잠들기 전에는 분명 모든 것이 캄캄한 밤이었지만 지금은 맑은 햇살이 아름다운 아침이다. 밤이 아침이고 아침이 밤이다. 봄은 여름이 되고, 여름은 가을이 되며, 가을은 겨울이 되었다가 겨울이 다시 봄이 된다.
모든 것이 끊임없이 서로 뒤섞이고 갈라졌다가 하나가 되기도 하며 이어진다. 부자가 더 부자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가난해지기도 하며,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해지기도 하지만 부자가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은 올 때 오고, 갈 때 제 나름대로 제 갈 길을 간다. 아무 것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없으며, 우리 인생도 똑같다.
어제 만난 아는 분도 얼마 전에 우연히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협심증으로 관상동맥 세 개가 모두 막혀 풍선확장술을 시술했다고 한다. 얼굴이 동안이고 일상생활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은 언제나 청춘인양 확신하고 있었는데, 아주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멀리 있어서 자신과는 전혀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였던 죽음이라는 현실이 바로 자신의 옆이 아니라 신체 안까지 들어와 있었는데도 자신은 전혀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그냥 즐겁게만 살아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까 자기와 비슷한 경로로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들도 여럿 있었다. 자신이 문상도 가고 했지만 그런 면에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뿐이다. 자신의 건강을 추호도 의심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을 가져가 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자신의 완벽한 통제 하에 있는 것처럼 보이던 모든 삶의 요소들이 갑자기 자신의 통제범위 밖에 존재하는 죽음에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몸에 생기는 변화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모든 변화들이 당장 죽음을 가져올 거라고 믿지는 않지만 삶을 위협하는 요인들로 보이고, 조기 발견하여 조기 치료하거나 조절함으로써 통제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자연적인 노화현상을 비켜갈 수 있다는 나를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며, 자신이 마치 죽음까지도 무시할 수 있는 능력자라도 된 것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우리 몸이 서서히 쇠퇴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너무 그런 상박적인 통제 감정에 휘둘리다가 건강염려증으로 정신과 의사를 찾아야 할 수도 생기지만...
우리가 태어나고 죽은 것은 변할 수 없는 하나의 사실이며, 그 죽음이 언제 어떤 형태로 찾아올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막걸기나 포도주가 혈관이나 심장 건강에 좋다고 매일 계속 마시는 사람이 심장혈관계 장애가 아니라 간경화증으로 사망할 확률이 더 높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삶도 죽음도 붙잡거나 통제할 수는 없지만, 단지 선택의 기회만 주어질 뿐이다. 올해는 사고사의 위험이 있다는 점괴를 믿고 외출의 기회를 줄이면 사고로 사망할 가능성은 줄어들지만, 비만이나 그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할 가능성은 더 늘어날 수 있는 것이나 같다.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삶 또한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죽음도 삶의 한 부분이며, 죽음이 없다면 삶 자체도 무의미하다. 신문에 나는 부고란이나 사고사의 내용을 그냥 다른 사람의 일로 보지말고 조만간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의 간접경험의 기회로 접해보자.
살인자를 찾는 형사와 암을 찾는 의사의 가장 큰 차이점은 형사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끊임없이 죽음을 직면하며 범인을 찾지만 의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의 일이나 인생에 대한 과정이나 활력이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다.
죽음에 대한 명상은 저속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수천 년 전해 내려오는 불교수련의 일부일 뿐만 아니라 고전적인 철학의 전통이다. 믿는 것보다 알려고 하는 것만 논리적이라 생각하지만, 삶의 모든 것, 특히 미래의 일은 전혀 알기는 커녕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는 일에는 죽음에 대한 준비도 포함된다. 삶에는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고차원적인 질서가 존재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힘들 때 나에게 힘을 주고 죽은 다음에도 가치가 사라지지 않을 어떤 의미가 있음을 믿어보자. 현재의 삶이 조금은 더 충만해질 것이다.
내가 죽음을 내 곁에 있는 친구처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면, 죽음도 나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않을 것이며, 오히려 다른 사람을 더 존경하고 나 스스로를 더 겸손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오늘도 즐겁고 건강한 하루 만드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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