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뿐만이 아니라 젊을 때까지도 힘들 때는 가끔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 어떤 신비스런 절대자가 나타나서 나의 이 어려운 현실을 해결해주기를 바라곤 했다.
007 영화시리즈가 인기가 있었던 이유도 첩보원인 제임스본드에게 어떤 임무가 주어지면 항상 Q처럼 신비스런 기부자가 나타나 최첨단 장비를 친절하게 전해준다. 요즘도 친절한 기부자로부터 신비스런 물건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통증 때문에 진료실을 방문하는 환자들도 친절한 기부자인 의사로부터 자신의 고통문제를 해결해줄 신비스런 물건인 처방전을 받아야 하는데, 만약 의사가 약이 필요없다며 처방전을 발행하지 않으면 실망김이 클 것이다.
수술결과는 환자의 심리 상태에 따라 자주 달라진다. 정신병 환자는 정신병과 관련이 없는 수술을 받고 증상이 상당히 완화되는 반면, 신경증 환자는 수술후 상태가 더 악화될 수도 있다.
우리 나라에서 하는 굿과 같은 주술적 민간의례도 마찬가지다. 굿을 함으로써 몸에서 악한 기운을 행사하고 있는 어떤 대상을 상징적으로 제거함으로써 악한 기운이 없어지고 몸이 회복되는 것이다.
알게 모르게 환자가 수술 자체를 자신의 어떤 행위에 대한 처벌로 여긴다면 수술 후 죄책감에서 벗어나면서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취없이 그냥 수술을 받으며 고통을 감수해야 수술 효과가 좋아질 것이라 생각하는 일부 환자들의 심리적 기저를 이해할 수 있다.
환자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자신이 겪는 고통을 이해하고 남에게 인지시키기 위해 정확한 진단명이 없는 증상에 대해서도 진단명을 밝혀줄 것을 요구한다. 그래야 자신의 고통이 정당화되고, 치료에 대한 확신과 보험금 지급도 훨씬 쉬워지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적 추세에는 제약회사가 관심을 가지는 특정 소비자 집단의 영향이 크다는 생각이다. 개발에 많은 돈과 노력이 들어간 신약의 판매 성공을 위해서는 새로운 진단의 범주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같은 증상이나 고통, 혹은 같은 중독 증상에 시달린다고 느끼는 사람들끼리 모임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면서 질병이라 보기에 모호한 증상들을 질병으로 분명하게 분류해야 한다는 압력이 생기고, 신약이 시장에서 새로운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된다.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요소로 여겨지다가 아예 질병으로 분류된 증상들의 예는 동맥경화증이나 고혈압, 고지혈증, 비만, 위산역류 등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조만간 암에 걸릴 위험성을 높인다고 여겨지는 흡연도 위험요인이 아니라 중독으로 보면서 곧 질병으로 규정될 수 있다.
의학이 사람들의 고통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다는 짜증섞인 실망이 높아지고 있다. 의학은 혈당수치를 자연적으로 회복되는 방안에는 거의 연구를 하지 않고 있다. 그냥 혈당을 낮춰 정상범위로 유지하는데만 관심이 있는 것이 좋은 예가 되겠다.
의사는 자신이 아는 질병만 생각하며 환자를 대하고, 환자는 질병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으며 자신을 괴롭히는 고통 해소를 위해 의사를 찾기 때문에 서로의 간극을 좁힐 수 있도록 의사와 환자가 모두 유능해야 고통에서 더 쉽게 회복할 수 있다.
현실 세상에도 사람이 되고 싶은 곰에게 신령스러운 쑥 한 줌과 마늘 20개를 주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고 사람되기를 기도하라는 방법을 알려주어 웅녀로 재탄생시킨 환웅같은 신비스러운 재능 기부자는 많이 있다.
평범한 의료행위에서도 나는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본다. 우리가 마치 영웅처럼 돌아다니기 때문에 보지 한 곳에 고정되어 있는 신비스러운 재능 기부자를 만나지 못했을 따름이다. 그렇지 않은가?
오늘도 즐겁고 건강한 하루 만드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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