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일과 후에 잠깐 들릴 때가 있어서 갔다가 지인들과 집앞 '처가집'이라는 단골 호프집에서 맥주를 한 잔 하기로 했다. 지하철로 이동하고 있는데 사위에게서 "아버님 저녁에 약속 있으세요?"라고 문자가 왔다.
"뭐, 8시 반 이후에는 처가집에 있을꺼야."
"그럼 8시 반에 가겠습니다"
내가 일이 조금 늦게 끝나 10분 후에 처가집 호프에 가니까 만나기로 한 지인들은 왔는데 사위가 보이지 않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 어디 계세요?"
"응, 처가집에 있는데?"
"저녁은 어떻게 하세요?"
"뭐 그냥 먼저 먹어라"
"장서방이 뭐 의논할게 있다는데요?"
"그래? 그럼 처가집으로 오라 그래"
그렇게 한참을 지인들과 즐겁게 지내다 늦게 집에 가서 옷을 벗으며 언뜻 생각이 사위의 처가집과 내가 말한 처가집이 단어는 같지만 의미가 완전히 달랐다는 사실을 알았다.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싸움이 나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거나 전달하지 못하거나 상대의 생각을 잘못 이해하기 때문에 생긴다.
우리는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을 위해서 말을 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침묵은 금이라 했지만, 요즘의 텔레비젼 프로그램을 보면 침묵은 은이요 말은 황금인 듯하다.
어떤 사람이 자기는 마음이 약해 파리 한 마리 죽이지 못한다고 말하는 순간 자신의 다리에 붙은 모기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가차없이 손바닥으로 쳐서 죽이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조금 전에 자신이 한 말의 의미도 생각하지 않는다.
힘없는 생명체를 도와야 한다는 평소의 선한 마음도 '이쁘다'거나 '귀엽다'는 생각과 어긋날 때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평화나 안전을 위해 '귀찮거나 해로운 벌레'는 즉시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에만 몰두하게 된다.
위험한 상황에서 노약자나 어린이, 여성을 먼저 구해야 한다는 의미는 나보다 약하기 때문이며, 그것을 정상적인 나의 책임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 때 추석날 아침에 사라호 태풍이라는 아주 센 태풍이 와서 동네가 완전히 침수되어 근처 산으로 피난을 가야하는 일이 생겼는데, 가족들은 모두 식량이나 귀중품을 들고 나오는데 나 혼자 키우던 고양이를 안고 나와 가족들로부터 웃기는 놈이라고 지탄을 받은 적이 있다.
피를 빨아먹고 사는 모기도 나쁜 해충이 아니라 그냥 임신한 새끼를 잘 키우기 위해서라고 어머니의 모성을 부여하면 내 피 정도는 기꺼이 보시할 수 있다며 참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의 이질적 가치가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지만 아주 이해하지 못할 부분도 아니다.
세상에는 귀여운 벌레도 있는 반면 징그러운 아이도 있을 수 있다. 무엇이 귀엽고 무엇이 징그러운지를 결정하는 근거는 다름 아닌 나의 습관이다. 둘 다 나름의 감각을 가진 생명체로 구해야 할 가치가 있다.
나는 어릴 때 어른이 되면 사촌 형과 같은 멋있는 생각을 할 수 있고 리더십 있는 사람이 되고 아버님이 사신 만큼만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두 분다 돌아가셨지만 요즘도 한번씩 그 분들의 삶을 나의 삶에 대치시켜 나의 삶이 어떤지 생각해본다. 그런 과정을 통해 살아계실 때보다 더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해나 갈등, 이별이나 아픔같은 어떤 부정적 감정도 우리 사이에 끼어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고인에 대한 절대적인 추모는 정상적이 아니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런 순수한 사랑의 과정을 통해 낯선 것, 낯선 사람과의 관계 또한 만들 수 있다.
나는 지금 살아있지만, 언젠가는 나도 죽을 것이다. 오늘 이 시점에서 삶과 죽음의 의미가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문제는 지금 당장 그리고 신경써서 수행해야할 일은 다른 사람과의 교류다.
오늘도 즐겁고 건강한 하루 만드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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