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중앙 마라톤 대회가 비속에서 열렸고, 많은 주자들이 '이깟 비 정도는 나의 마라톤 열정을 막을 수 없어!'라며 주로를 내달렸다.
주로를 달리며 비를 대하는 주자들의 대응들을 보며 그 사람의 달리기 재능과는 별도로 그 주자의 살아온 삶의 태도를 상상해보는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재미있었다.
우의를 걸치거나 그냥 비를 맞는 주자, 물 고인 바닥을 요리 조리 피하거나 그냥 물을 철벅거리며 달리는 주자, 비에 인상을 쓰며 투털거리거나 비를 아랑곳하지 않고 즐기는 주자..다양한 삶의 태도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타나고 있었다.
우리 몸은 말 그대로 물리적인 측면에서 점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감정적인 측면에서도 만들어진다. 어릴 때 누가 무엇을 어떻게 먹여 주었는지,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는지, 안아주지 않았거나 거칠게 안아주었는지, 보호자가 자주 쓰다듬어 주었는지 간지럼을 태웠는지, 기저귀를 자주 갈아주었는지 배변 교육은 잘 시켰는지 같은 물리적 환경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전에 완전히 만들어져 주어진 몸은 없다. 우리 각자의 몸에는 가족들의 몸에 대한 이야기가 남긴 은밀한 각인이 찍혀있다. 자식이 몸에 자신감을 가지길 바라는 부모는, 특히 엄마는 자식의 몸을 다루며 자신의 바램을 전하려 노력하겠지만, 자신이 육체적으로 소극적이라면 아무리 노력해도 조금도 자식에게 전달될 수 없을 것이다.
자식의 긍정적인 육체적 인식을 위해 아무리 의식적으로 노력해도 자신의 심층적인 욕망들과 현실적인 신체적 경험들이 자식들에게 전달되게 마련이다.
내가 맨 몸에 비를 맞으며 주로에 고인 물에 상관없이 앞만 바라보며 철버덕거리고 달려가는 그 심리적 기저에는 나의 부모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양육태도도 있으며, 나 또한 자식들에게 그런 모습을 전해주었을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내가 웃으면 상대가 웃고, 내가 손을 내밀면 상대도 손을 내밀며 악수를 하고, 덕담을 교환하는 인간관계의 순환을 '동조'라고 하는 긍정적인 인간관계의 순환은 상호간의 감정적 파장에 내가 동조한다는 의미다.
상대가 나에게 미소어린 인사를 보냈는데, 내가 다른 데 정신이 팔려 미처 그 신호를 놓쳤다가 뒤늦게 깨닫고 서둘러 상대에게도 돌아가지만, 너무 가깝게 다가가는 바람에 상대가 놀라 몸이 굳어지며서서 동조하지 못하게 만든다.
인간관계에서 항상 일어나는 문제들이지만, 문제는 동조하지 못하는 불협화음 쪽으로 균형이 기울어질 때 생긴다. 나의 미소에 대해 상대고 틀림없이 즐겁게 미소로 답해줄 것이라는 확신에서 나의 신체, 심리적 자아를 인정받는 것이다. 나의 경험이 든든하게 뒷받침된다.
동조를 자주 경험하지 못한 아이는 자라면서 달래기 어려운 까다롭거나 우울하고 내성적인 표정의 소심한 사람이 되거나 부모와 떨어질까 촉각을 곤두세우는 신경질적인 육체적 행동들을 발달시키게 될 것이다.
비속을 달리는 주자들의 신체적 행동을 보면서 어떤 육체적 상호작용들을 주고받고 어떤 욱체적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지 나름으로 상상해보는 것이다.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잘 포착하지 못해거나 한순간 너무 가까이 다가갔다가 다음 순간 너무 멀리 사라져서 아이로 하여금 부모와 자기 사이의 공간이 불안정하다고 느끼게 만든다. 그래서 아기는 제 몸이 점유해도 좋은 공간을 알지 못해 망설임과 초조함을 느끼게 된다.
이런 신체적 상호작용의 흔적들이 나의 성격은 물론이고 몸에도 슬며시 나타난다. 아무 표정없이 가만히 자기 앞만 보고 달려가는 주자의 모습은 생각에 잠긴 듯 보일 수도 있지만, 공허해보이거나 단호해 보일 수도 있고, 상냥하거나 솔직해보일 수도 있다.
막 기거나 몸을 일으키기 시작한 아이들에게 육체발달에 대한 욕구를 "그래 한번 더 해봐!:"라거나 "위험해, 하지마!"라며 어떻게 만족시켜 주었는지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운동을 좋아하는 부모들과 운동을 함께 하며 자란 아이들은 근육 뿐만 아니라 즐거움에 대한 긍정적인 감각을 부모와 연결하여 이해하게 된다.
오늘도 즐겁고 건강한 한 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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