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냉정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생각의 가장 내면과 마음의 가장 밑바탕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막상 부딪쳐 찾아봐야 한다. 우리의 언어 건너편에 있는, 말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은 누구도 부딪혀보지 않으면 모른다.
이성이나 언어는 압도적인 현실 앞에서는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우리는 매일 자신의 삶이 이루어지고 유지는 현장에 있다. 그러다 보면 항상 그 장소에서 있는 사람들을 차츰 알게 된다. 까다롭고 딱딱해 보이는 사람, 항상 웃으며 사람들을 맞아주는 사람 등등.
깨끗한 창밖 건너편의 나즈막한 야산에는 더운 여름이 찾아들었다. 마구 뒤섞인 여러 강도의 초록색 나뭇잎들이 여러 겹으로 겹쳐져 강렬하게 빛나고 있어서 눈이 부실 지경이다. 매일 무척 무더운 폭염의 날씨가 이어진다.
휴게실에는 항상 텔레비젼이 켜져 있는데도 신기하리만치 고요하다. 언제나 오후가 되면 어중간한 나이의 여환자들이 휠체어를 타도 재빠르게 지나간다. 휠체어를 미는 사람도 비슷한 연배의 남자다.
누르스럼한 빛을 띄는 투명한 피부에 적당히 마른 체격으로 몸 전체가 투명해 보일 정도다. 하늘색 가운미며 휠체어까지 투명해 마치 투명 필름이 움직이는 듯한 모습이다. 사라졌다가 다시 수 분 후에는 소리 없이 사람들의 곁을 지나가곤 한다.
창가 아래쪽 도로에서는 온갖 종류의 차들이 투명한 햇빛을 받으며 멈추거나 달려가고 있다. 환자는 투명한 상태로 매우 조용하게 정면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녀의 시선은 검푸르게 변해 시원한 느낌을 전해주는 건너편 야산의 푸르름이었다.
자연은 언제나 그 어떤 경우에도 실패해서 찢어버리고 싶은 그림처럼 되는 적이 없다. 몇 달 후 가을에는 틀림없이 멋지고 아름다운 단풍이 세상을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휠체어를 밀던 남자도 입을 다문 채 바깥 풍경을 응시하고 있다.
두 사람의 모습은 한 장의 사진처럼 보인다. 그로부터 몇 일 후 투명한 휠체어가 지나가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짦은 휠체어 산책 신세는 벗어난 것이겠지. 어릴 적에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게 된 유리 구슬 하나를 아무리 해도 찾을 수 없을 때의 쓸쓸한 기분을 느낀다.
어릴 적 작은 나의 우주 안에서 소중한 물건이 사라질 때면 그것이 어딘가에 섞여 있다가 다시 나온다는 식의 멋진 희망을 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냥 말 그대로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나의 작은 우주 속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었지만, 그런 감정은 소중한 물건이 영원히 사라졌다는 사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는 쓸쓸함이었다. 스쳐 지나치며 의미 없는 몇 마디 대화를 나눈 적은 있지만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
내가 나이가 들수록, 단지 그렇게 내 앞을 스쳐 지났던 사람이 영영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마치 이 세상에서 소중한 존재가 사라진 것처럼 돌이킬 수 없는 쓸쓸함을 느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기도 한다.
내가 오늘 살아가는 인생은 다른 길이 없었고,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내 마음 속에서 생겨나는 고통은 살아오면서 얻은 마음의 상처에서 스며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나는 남편으로 아버지로서 일생을 살아왔다는 사실, 이것이 위대한 업적이 아니고 무엇인가!
오늘도 흥겹고 건강하고 행복한 한 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이동윤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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