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우리는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지내실까 한번씩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평소와 같은 호기심 많은 악동같은 모습으로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즐겁게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계실꺼라 생각합니다.
형님과 저의 인연은 30여년 전 송양(宋孃)과 제양(諸孃)의 인연으로 자연스레 만들어지게 된 것같습니다. 젊을 때는 서로 바빠 떨어져 있는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었지만, 1990년대 초반에 형님께서 울산을 떠나 서울로 입성하시면서 자주 뵈며 희로애락을 나눌 수 있는 실질적인 이웃사촌이 되었지요. 이제 함께 소주잔 나누며 정담을 나누던 자리를 영원히 다시 할 수 없음이 안타깝고 그리울 뿐입니다.
형님을 생각할 때마다 항상 불교에서 사용하는 무량심(無量心)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모든 원한을 버리고 중생을 차별하지 않는 보살의 네 가지 마음을 나타내는 말이지요. 남에게 즐거움을 주려는 마음인 자무량심(慈無量心), 남의 괴로움을 덜어 주려는 마음인 비무량심(悲無量心), 남이 괴로움을 떠나 즐거움을 얻으면 기뻐하려는 마음인 희무량심(喜無量心), 남을 차별하지 않고 평등하게 대하려는 마음인 사무량심(捨無量心)으로 정리할 수 있는데. 형님의 평소 생활자세가 여기에 딱 맞다는 이야기지요. 소나무나 대나무처럼 올곧은 자세로 사시장청(四時長靑)한 푸르름의 기상을 가족들에게 보여주시던 자신있는 모습에서 많은 감명을 받곤 했습니다.
항상 언행에 잘못이나 부족함이 없는지 스스로 돌이켜 살피고, 남에게 의지하지 아니하고 혼자만의 힘으로 어려운 처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면서도 언제나 주위사람들에게 손 안에 움켜쥐는 삶이 아니라 빈손의 나눔의 덕을 설파하는데 솔선수범하시는 수행자같은 열정적인 아버지 모습을 보며 자란 아이들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가 활동하면서, 아무런 도움이 없이도 저절로 자라 꽃피고 열매맺어 자손을 남기는 식물들처럼 형님께서 생각하시던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스스로 헌신하며 건강하게 살아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항상 넘치는 에너지로 거침이 없으셨지만, 부모님에 대한 흠모의 정과 신앙심으로 가슴 싶은 곳에서 올라오는 정(情)과 사랑에 바탕을 둔 자신감으로 일단 결심하면 그대로 거침없이 밀고 나가시는 모습에 많은 감동을 받고 존경심이 일기 일수였지요. 그런 만큼 형님의 가정은 참 행복한 가정이었습니다. 형님이 계시지 않는 지금도 그런 가족간의 행복한 유대가 그대로 쭉 이어지고 있으니까 남은 가족들 걱정은 전혀 필요가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바닷가 일출이나 강가의 석양, 아름다운 가을단풍이나 겨울의 눈꽃만 보고도 자연의 조화로움에 감탄하고 즐거워하시던 참으로 유쾌한 성품으로 주위 사람들까지 즐겁고 유쾌하게 만들어주셨지요. 그런 형님의 유쾌한 성정 때문에 항상 형님 주위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각자의 무거운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 가곤 했었지요.
무엇이 형님을 카톨릭 신자로 이끌었는지는 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 나 혼자만의 생각입니다. 늘 주님께 기도드리고, 언젠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시던 부모님 곁으로 가게되기를 바라셨을 것입니다. 형님의 기도를 주님께서 들어주셔서 불려가셨으니 남은 우리들은 주님의 은총 속에서 행복과 편안한 미소로 지금도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으리라 믿고, 보고싶고 그립지만 참으며 열심히 남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형님, 우리의 삶은 항상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과정이지요. 그래서 이별은 다시 만날 희망을 약속하는 일이기도 하지요. 형님께서 지금 살아가는 세상은 우리와 다르지만 똑같은 시간을 함께 하며, 함께 웃으며 더 진실한 삶을 산 후에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에 눈물이 아니라 웃으며 손을 흔들며 헤어질 수 있답니다. 형님도 여전히 평소의 밝은 미소로 항상 웃으며 다시 만날 때까지 유쾌하고 즐겁게 지내시길 빕니다.
2012년 3월
이동윤 씁니다.
|
다음글 : 
이전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