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이 생각하는 운동, 움직임에 대한 의식의 전환은 전통적인 기성세대들의 이동, 유체성, 액체성의 새로운 거대 서사를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전체화 또는 환원적인 하나의 기술이 아닌 일련의 물음, 이론, 방법론을 제안하고 있다.
그들이 생각하는 시대적 흐름, 즉 패러다임의 의미는 현대 디지털 지식 정보 산업 사회라는 현 시대의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이론이나 방법, 문제의식 등의 체계이다. 천동설을 진리로 여겼을 때는 모든 천문 현상이 천동설의 테두리에서 설명되던 것처럼.
운동이나 움직임에 대한 인식의 흐름이 언제나 영원히 모든 것을 기술하는 형이상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또한 그 범위와 내용에서 자의적으로 제한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때로는 이런 제한들이 현대적 운동의 방법론적 일차성을 통째로 약화시키려는 위협이 된다. 예를 들어 시공간적 부동성, 고정성, 저류장, 또는 운동 사이의 이원론적 분할이 도입될 때 부동성 자체도 운동의 조건으로 이해되면서 제한적이 되기도 한다.
다중적 고정성 또는 포털 같은 계류장이 액체적인 근대의 유체성을 가능하게 하거나 운동이 중첩되고 다채로운 시공간의 부동성을 가정하게 된다는 생각이다. 운동과 정지의상대적 관계는 있지만, 물리적으로 절대적으로 부동적인 것은 없다는 의미다.
모든 것이 운동 중에 있다는, 모든 현대 물리하자들의 진부한 경험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어떤 운동 연구가들은 모든 것이 이동적이라는 이론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모든 것은 시공간 속에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운동의 흐름이나 전환에 대해 관심을 갖는 자연과학자들이 별로 없다는 것이 놀랄 일은 아니다. 모든 것이 운동 중에 있다거나 운동은 좋다고만 말하는 것은 최소한의 경우에는 분석적으로 쓸모가 없다는 것, 최대한의 경우는 정치적으로 치명적이다.
운동 철학의 방법론적 우리에게 실재에 대한 또 다른 탄탄한 관점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모든 것에 대해 참이며, 모든 탐구나 연구영역을 가로질러 시공간이 가지는 것과 같은 엄격함을 가진다.
확실히 많이 움직이는 어떤 현대적 사물에 관해서만 연구하는 것고 운동 그 자체의 형이상학 사이에 제3의 길이 있다. 의식의 흐름과 이론적 틀이 존재했던 모든 과학적 이론에 대한 기술을 제공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것에 대한 유일하게 일관되거나 환원적인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 같은 사물에 대한 서로 다른 과정에서 본 여러 설명과 관점들이 있을 수 있으며, 운동이나 움직임은 시간이나 공간만큼 실재적인 존재의 환원불가능성을 벗어날 수 있다.
오늘도 흥겹고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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