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결혼한 지 올해 햇수로 33년 째다. 그동안 아이들 세 명을 키워 큰 딸은 시집가서 역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큰 아들은 내년 봄에 결혼할 예정이고, 막내아들은 군대갔다 와서 지금 학교에 다니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간혹 서로간의 가벼운 신경전 같은 것은 몇 번 있었지만, 언성을 높이거나 서로 인상을 쓰는 등의 부부싸움을 해본 적은 한번도 없다.
잘 나가는 의사동기들과 달리 공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먹고 살기도 힘들게 한다는 미안함 때문일 수도 있고, 두 사람 모두 서로를 미워할 만큼 신뢰나 사랑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보통 사람들처럼 아이들 잘 키우고, 그저 건강하게 지내는 평범한 목표에 너무 집중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두 사람의 인간관계에서 감정적 얼킴이 거의 없었고 항상 서로에게 공감하려 노력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더 정확할 것같다.
우리는 형편이 안된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나 구체적이고 세부적이고 실질적으로 얼마나 형편에 맞지 않는지 따져보는 경우는 드물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여주는 것이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이며, 상황을 다시 제시하기 위한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구체적이지 않는 이야기는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어 관계를 손상시킬 뿐만 아니라 나의 나쁜 행동으로 지적당하기 쉽다. 격의 없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감정이 섞이지 않는 편안한 대화가 서로의 마음을 여는데 중요한 이유다.
살아가면서 서로에게 섭섭하거나 소외되거나 무시당하는 느낌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주지 않도록 역지사지의 마음을 바탕으로 항상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살아온 덕분일 것이다.
항상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주요 관심사나 인식을 알아보고, 서로에게 무엇이나 서로 양보하고, 감정적으로 흥분하지 않도록 노력하지만 혹시 흥분하게 된다면 감정이 정리될 때까지 몇 일 휴전을 하고, 다음에 점진적으로 접근하여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기준을 정하고 성실히 지킬 것을 약속하고, 그런 믿음이 반복되어 서로가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이 무분쟁 부부관계가 지금까지 만족스럽게 유지될 수 있었던 방법이 아닐까 싶다.
내년에 아들이 또 결혼을 한다니까 다시 생각나는 우리의 성공적이고 행복한 결혼생활의 비결에 대한 단편들이다.
|
다음글 : 
이전글 : 
